한국일보

[여명] 야구 패배보다 뼈아픈 한일 관광 격차

2026-03-12 (목) 12:00:00 노희영 서울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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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빅매치로 꼽혔던 7일 한일전에서 한국이 8대6으로 아쉽게 패배했다. 이틀 전 체코를 11대4로 제압하고 2009년 대회 이후 처음으로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승리한 기쁨도 잠시. 2015년 이후 프로 선수들이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한 번도 일본을 이기지 못한 불명예 기록은 깨지 못했다.

“한일전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국룰’을 지키지 못하는 분야가 또 있다. 바로 관광이다. 한국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보다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다. 2012년에는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사상 첫 1000만 외래 관광객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이 ‘관광 한일전’에서 일본에 뒤진 것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재집권한 2012년 이후부터다. 아베 전 총리는 관광을 활성화해 일본 경제를 다시 세우겠다며 모든 부처의 장관들이 참석하는 관광입국(觀光立國) 추진 각료회의를 신설했다. 본인이 직접 의장을 맡아 관광 분야의 컨트롤타워를 자처했다. 양적완화 조치로 엔화 가치 약세를 유도하며 방일 외국인들의 달러화 기준 구매력도 높였다.


비슷한 시기 한국의 관광정책은 후퇴했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관광진흥비서관 직책을 폐지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정책실을 관광정책국으로 축소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던 국가관광전략회의도 국무총리 주재로 격하했다.

결과는 숫자의 차이로 바로 나타났다. 일본은 2013년 사상 첫 외래 관광객 1000만 명을 돌파했고 2016년 2000만 명, 2018년 3000만 명 시대에 진입했다. 코로나19로 주춤했지만 이후 빠르게 회복하며 2024년 3690만 명, 2025년 4268만 명을 기록했다. 한국 역시 지난해 1893만 명의 외래 관광객을 유치해 2019년의 역대 최고 기록(1750만 명)을 경신했지만 일본과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양국 간 관광수지 격차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은 지난해 107억 6000만 달러(약 15조 4000억 원)의 관광수지 적자를 냈다. 대조적으로 일본은 6조 3229억 엔(약 55조 6000억 원) 규모의 역대 최대 관광수지 흑자를 거뒀다.

한국 정부도 뒤늦게 관광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나섰다. 이재명 정부 들어 문체부의 관광정책국이 관광정책실로 확대됐다. 국가관광전략회의도 대통령 소속으로 격상하기로 했다. 이를 위한 관광기본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국가관광전략회의에 참석해 관광정책 대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해당 회의는 2030년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 시대라는 기존의 선언적 목표만 되풀이했을 뿐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전략은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광 업계는 강진군 반값 여행이나 바가지요금 근절 등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내용이 해당 회의에서 주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여전히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대중교통 및 택시를 이용하거나 각종 공연 티켓 등을 예매할 때 애를 먹고 있다. 교통 인프라가 발달한 서울에서도 외국인은 해외 신용카드로 지하철 승차권을 구입하지 못하고 현금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K팝 공연을 즐기고 싶어도 한국의 복잡한 예매 시스템과 언어 장벽에 가로막혀 콘서트 티케팅에 실패하는 외국인들도 많다.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한 K팝과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케이팝데몬헌터스’ 등 K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은 전 세계인들이 가고 싶은 나라가 됐다. 이들이 실제로 한국을 찾도록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고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한 큰 그림을 제시하는 것이 지금 정부가 할 일이다.

해묵은 과거사를 내세워 무조건 일본을 이기자고 관광 한일전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관광 대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바로 옆 나라가 과거 어떤 전략을 취했는지 살펴보고 필요한 부분은 참고하자는 것이다. 2030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한국의 목표는 일본이 이미 2018년 달성한 수치다. 일본의 2030년 목표는 우리의 2배인 6000만 명이다. 이 대통령도 아베 전 총리처럼 관광산업을 직접 챙기며 한일 간 격차를 좁히는 데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노희영 서울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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