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역사속 하루] ‘마스크 창시자’ 우롄더의 활약

2026-03-06 (금) 12:00:00 조영헌 /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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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10월 하얼빈의 러시아 조계에서 중국의 첫 페스트(흑사병) 환자가 발견됐다. 한 달 전 러시아령 다우리아에서 최초로 발생한 페스트 환자의 균이 전염된 것이다. 이는 14세기 팬데믹 수준으로 전파됐던 벼룩 매개의 선(腺)페스트와는 다른 폐(肺)페스트로, 비말로 공기 중 감염이 가능했다. 확산 속도 역시 매우 빨랐다. 이 차이점을 간파하고 폐페스트의 공기 전염을 막기 위해 의료진에게 면과 거즈로 만든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는 등 마스크 방역을 최초로 도입한 이는 화교 출신 우롄더(伍連德)였다.

페낭 태생의 말레이시아 화교인 우롄더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중국인 최초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중국 굴지의 세균학자로, 1907년부터 청 왕조의 초청으로 중국에 들어와 톈진 군의학당 부교장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1910년 하얼빈에서 페스트 환자가 발생하고 확산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주 지역으로 파견됐다.

중국 북동부의 만주에서 발발한 페스트를 연구하면서 병의 근원과 전파 경로를 찾아낸 우롄더는 마침내 마스크 방역을 중심으로 1911년 3월에는 동북 지방의 페스트 확산 추세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1911년 4월 3일 펑톈에서 국제 페스트 회의가 열렸는데 여기에 중국 청조의 대표로 참여한 우롄더는 이 페스트 국제회의를 조직하고 의장직을 맡았다. 당시 만주 철도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중국·일본·러시아 등 11개국의 30여 명의 의학자가 참여했던 이 회의는 최초의 페스트 국제회의로 국제 공중 보건 협력의 시작점으로 평가받는다.

만주 전역에 페스트가 유행한 배경으로 러시아와 남만주 철도 회사의 철도망 설치가 있었다. 교통 인프라의 정비는 아이러니하게도 페스트의 확산을 자극했다. 우롄더의 페스트 방역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국제 페스트 회의가 개최됐음에도 불구하고 청은 6개월 뒤 신해혁명의 발발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조영헌 /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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