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생각] 어머니의 지랄병을 고친 아들

2026-02-04 (수) 07:50:09 김길홍/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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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이야기다. 동네에 지랄병 아주머니가 살았다. 친구의 어머니였다.

하루는 아들이 교회에서 늦게 집에 왔다. 그의 어머니가 “농번기에 어딜 까질러 가서 지랄을 하다가 이제 집에 왔다”고 화를 내며 야단을 쳤다. 그때 아들이 갑자기 마당에서 나 동그라져 몸을 비틀고 다리를 꼬고 입에서 거품을 내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만 해도 멀쩡했던 아들이다.

사색이 된 그의 어머니가 안절 부절하고 있는데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난 아들이 “어머니 이것이 지랄입니다”라고 했다. 그후부터 지랄이란 말을 다시는 안했다. 지랄병을 고친 것이다.


‘지랄’이란 말은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쓰는 용어다. 언어 속에는 생명력이 있다.
인도의 시성 타골이 한국을 ‘동방의 빛’이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요새 한국이 빛으로 우뚝 솟고 있다. 그의 언어는 살아서 숨쉬고 있다.

언어는 금같은 언어가 있고 쓰레기 같은 언어도 있다. 한국의 군대에서 쓰는 언어가 지저분해서 제대 후에도 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런 반면 아름다운 시나 소설은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언어는 그 사람의 인품을 나타낸다. 품위 있고 고상한 언어를 쓰자. 우리말에 ‘언중유골’이란 말이 있다. 말엔 뼈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시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시 속에 뼈를 발라 내 버리기 때문이다.

아들이 어머니의 언어 속에 있는 나쁜 뼈를 빼어 낸것은 생각만 해도 장한 일이다. 이런 아들을 우리는 효자라 부른다.

언어는 인품과 품격이 도사리고 있다. 언어를 남용하는 것은 물을 함부로 쓰는것과 같다. 절제하고 아껴야 한다.

<김길홍/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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