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새해가 밝았습니다.
부디 힘찬 말처럼 강건하시기를 소망하며 글을 올립니다. 지난해, 한국방문 때 92세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부지런히 경로당으로 교회로 씩씩하게 잰걸음을 옮기시는 어머니를 뵙고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아버지 곁으로 가실 때까지 이 모습 그대로 변함없으시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일도 오늘처럼만 같게 하소서, 소원이 되었지요.
그런 어머니께서 손주들을 찾아 밤길을 헤매신다는 기막힌 소식을 들었음에도 제 자식 돌보느라 찾아뵙는 걸 뒤로 미룬, 이 불효를 용서하셔요. 가을이 깊어 겨울처럼 쌀쌀하던 어느 밤, 손주들과 영상통화 좀 하자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잠자리에 누운 손주들을 보여 드렸지요. “쟤들이 좀 전에 여기서 놀았는데 어느새 미국까지 가 있다냐?” 놀란 어머니의 모습을 뵙고 제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벌떡 일어나 비행기를 타지 않았습니다. 3개월 된 손자를 돌봐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요.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저의 이기적인 본심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지요. 혹시나 마지막 존엄마저 지키지 못하시면 어쩌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싸늘한 한겨울 바람이 가슴을 지나갑니다.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을 증손주라고 쫓아가시는 어머니. 한밤에 손주 찾아 나가실까 봐 문단속하는 동생. 하지만 저는 어머니를 온전치 못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자손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 없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이 지나쳐 혼동을 가져왔을까요? 무엇이 어머니의 기억에 혼란을 주었을까요. 어떤 혼재된 기억이 어머니를 괴롭히는 걸까요. 혹시 저희 어릴 때와 손주를 착각하신 것은 아닌지, 어지러운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저희의 불효를 용서하셔요.
가끔 깜빡깜빡하는 건 젊은 사람도 매한가지니 염려할 게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엄마, 여기 땅 팔 사람 없으니 꾹꾹 눌러 밟고 다니세요. 절대 서둘지 마시구요.” 행여 넘어지실까 잔소리만 했지요. 연세 들어 넘어지면 침대에 누운 채로 고생하다 가시는 어른들을 종종 보았거든요. 모처럼 만난 엄마에게 정겨운 얘기나 따뜻한 위로의 말은 제쳐두고 사춘기 자식에게 할 법한 잔소리나 하는 저를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제 말을 사랑으로 느꼈을까요, 제 자식 나무라듯 한다고 서운하셨을까요.
우리 어머니 천수 누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나라 가게 해주세요. 저는 늘 이렇게 기도했지요. 설사 자식들과 작별할 새 없이 가실지언정 다시는 육신의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교통사고로 해를 넘겨 병원에 계실 때나 암 투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 고통으로 애쓰던 모습을 저는 옆에서 보았었지요. 어머니가 그런 아픔을 또 겪는 건 정말 싫었어요. 이제까지 겪었던 아픔으로 충분하니까요.
이제는 건강하게 평범하고 평안한 일상을 누리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랍니까. “내가 어저께도 만났다니까. 말을 어찌나 잘하는지 몰라.” 가엾은 어머니. 미국에 있는 증손자를 어제 만났다구요? 기다리세요. 올 구월에 증손주 보여드리러 갈게요. 더 변하지 않은 지금 모습으로 그때 만나요. 말처럼 힘차게 일어나 손주들과 함께 뛰어야지요.
어머니, 더 가지 말고 지금처럼만. 제발, 거기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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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