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춘추] 새해, 북방의 한국인을 생각하며

2026-01-09 (금) 12:00:00 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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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북방에는 서로 다른 지형과 역사를 가진 네 지역이 있다.

만주, 간도, 연해주, 사할린.

지도로 보면 단순한 땅처럼 보이지만, 이 네 곳은 조선인의 이동과 제국의 충돌이 겹겹이 퇴적된 거대한 지층이다. 한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 어디까지 밀려갔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다시 시작했는 지를 보여주는 북방사의 좌표들이다.


먼저 만주는 중국 동북 3성?랴오닝·지린·헤이룽장?을 아우르는 광대한 대륙이다. 청나라를 일으킨 만주족의 발원지이자 20세기 초에는 러시아·중국·일본·조선의 이해가 정면으로 충돌한 공간이었다.

일제가 1932년 세운 ‘만주국’은 대륙 침략의 교두보가 되었고, 수많은 조선 독립군이 그 땅을 오가며 전투와 망명을 반복했다. 가난과 식민의 압박을 피해 넘은 이들이 정착한 터전이기도 했기에 만주는 투쟁과 생존이 교차하는 조선인의 북방 1번지였다.

그 만주 안쪽에 자리한 간도는 오래된 경계의 틈이었다. 두만강·압록강 북쪽, 오늘날 지린성 동부의 연길·용정·훈춘 일대는 조선과 청이 세운 백두산정계비의 경계가 시대의 혼란과 맞물리며 수많은 조선인 디아스포라가 자연스레 스며드는 통로가 되었다. 농토와 생계를 찾아 북방으로 향한 이들은 간도를 단순한 이주지가 아닌, 새로운 생존을 모색하는 역사적 확장의 관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조선인의 북방 정착이 가장 거대하게 펼쳐진 곳은 현재 러시아 극동 지역인 연해주였다. 두만강 하류를 건너면 곧 닿을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와 우수리스크(Ussuriysk) 일대에는 19세기 말부터 조선인 이주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한때 약 17만 명이 모여 살았다.

그들은 학교를 세우고 농장을 일구며 상실된 조선의 또 다른 형체를 만들어냈다. 이 공동체는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하루아침에 해체된다. 일본과의 충돌이 임박하자 소련은 연해주 조선인을 ‘잠재적 위험민족’으로 규정했고, 결국 그들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래서 연해주는 가장 큰 공동체의 고향이면서도 추방의 문턱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사할린은 북방에서 가장 고독한 섬이다. 러일전쟁 이후 남부가 일본의 가라후토(樺太)가 되었고, 일제는 탄광·벌목·군수 노동에 수만 명의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갔다. 광복 이후에도 귀국이 지연되며 사할린 동포의 상처는 오랫동안 미해결의 문제로 남았다. 사할린은 그래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섬, 제국주의 상흔의 바다를 품고 있다.

만주가 투쟁의 대지였다면, 간도는 경계의 틈이었고, 연해주는 공동체의 고향이었으며, 사할린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다. 이 네 지역의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조선인과 고려인의 북방사는 하나의 거대한 생존의 문법처럼 드러난다.

그리고 오늘, 그 후손들은 한국의 작은 도시와 농촌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이제 이 귀환 앞에서 질문해야 한다. 이 먼 길을 돌아온 이들에게 한국 사회는 어떤 환대를 준비하고 있는가. 그들을 단순한 노동력으로 보지 않고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품을 수 있는가.

그래서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한다. 만약 내가 그들이라면, 나는 고국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 질문에 진심으로 답하려는 순간, 비로소 백 년의 북방사는 하나의 온전한 서사로 완성될 것이다.

<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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