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근심은 사라지고 마음은 젊어져요”

2026-01-01 (목) 07:39:14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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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후 악기 배우며 활력 찾는 한인 시니어들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삶의 리듬을 만들어주고 감정을 표현하며 의미를 더해준다. 특히 시니어들에게 음악은 인생의 후반부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강력한 동반자가 된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 슬픔, 추억을 음악이 대신 말해준다. “음악이 없는 인생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했던 니체(Friendrich Nietzsche: Without music, life would be a mistake)의 말처럼 음악은 삶의 빈 곳을 채워준다. 귓가에 맴도는 멜로디 한 소절에 지난 추억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무심코 흥얼거린 노래 말에 잊고 있던 그 시절로 떠나게 된다.

버지니아에서 30년 넘게 세탁소를 운영하고 은퇴한 고호영 씨(74세)는 시간적 여유도 생기고 무언가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크로마하프’를 접하게 됐다. 그는 “음악과 무관했던 삶에 새로운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며 “음악은 나의 인생”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메릴랜드의 최봉회 씨(73세)도 십여 년 전 처음으로 ‘색소폰’을 잡았다. 다른 형제들이 악기를 다루는 것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악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 우울해지고, 만사가 귀찮아 쉽게 포기하게 되면서 무기력한 일상이 됐다. 그러던 가운데 불현듯 학창 시절 막연하게 꿈꿔왔던 악기를 만나게 되면서 무기력했던 삶에 의욕이 생겼다. 우울감은 사라지고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심지어 통증이 완화되는 효과도 경험했다. 단순히 기분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음악이 도파민(행복 호르몬)을 증가시켜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입증하듯 갑자기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악기를 배우는데 나이는 상관없다. 시니어라면 더욱 좋다. 뇌 건강에도 좋고, 사회적 연대도 생기고, 새로운 성취감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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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은 사라지고 마음은 젊어져요”

“부드럽고 따뜻한 소리가 나를 위로해준다”
고호영씨, “움직이세요, 희망이 찾아옵니다”

매달 ‘워싱턴 글로리아 크로마하프단’(단장 김영란)에서 악기를 배우고 연습하는 고호영 씨는 “음악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내가 악기를 배우게 될 줄은 몰랐다”며 “크로마하프를 배우면서 ‘내가 아직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도 갖게 됐고, 찬송가나 가요 등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하며 지난 인생을 돌아보는 기회도 됐다”고 말했다.

고 씨는 “크로마하프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악기로, 다루기도 쉽고 코드만 알면 악보를 볼 줄 몰라도 연주할 수 있다”고 추천했다. 또한 그는 “한 손으로 코드를 누르고 다른 한손으로 현을 튕기기 위해서는 순발력이 필요하고, 동시에 악보를 보면서 머리를 쓰다보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가족 모임이 있으면 크로마하프를 품에 안고 기꺼이 무대에 선다는 그는 “집에서 열리는 작은 공연이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최고”라며 “나이가 들수록 도전이 필요하고 사람들과 자주 만나는 기회도 필요하다. 게으르게 미루지 말고 자꾸 움직여야 희망이 찾아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느덧 70대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젊다고 생각한다”며 “주변에 아픈 분들을 보면 안타깝고, 특히 뇌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남의 일 같지 않아 무서움도 느끼지만 악기를 연주하며 좋아하는 찬송과 노래를 부르다보면 그러한 근심, 걱정은 사라지고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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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은 사라지고 마음은 젊어져요”

“멋지다. 색소폰 소리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봉회씨, “색소폰이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메릴랜드에서 색소폰 연주자로 잘 알려진 최봉회 씨는 색소폰을 배운지 어느덧 17년이 됐다. 혼자보다는 함께하는 것이 좋아 ‘색소폰 앙상블’도 만들었다. 교회 특송도 하고, 음악을 통해 지역사회 봉사도 하고, 선교 활동에도 도움이 됐다는 그는 “색소폰을 배운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교회성가대에서 활동도 했고 음악을 전공한 여동생도 있었지만 정작 자신이 악기를 배울 기회는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하모니카를 불었던 것이 전부였다. 다른 형제들이 악기를 다루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을 뿐 나와는 다른 길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날 교회에 미 육군밴드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던 분이 특송 연주자로 초청됐다. 1994년 이민 와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온 날들의 보상일까, 무언가에 홀린 듯 색소폰을 배우게 됐다. 청소년 오케스트라(INPASS)의 성인팀에 들어가 브라스 밴드에서 활동하게 됐고 지난 2015년 ‘색소폰 앙상블’을 창단했다. 8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30명으로 늘어났으며 매주 목요일 연습하고 있다.

색소폰의 장점에 대해 그는 “색소폰은 사람의 성대 구조와 가장 비슷하다. 테너, 알토, 소프라노 등 노래하듯 멜로디를 연주한다”며 “음 하나하나를 연주하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여야 하고, 복식 호흡이 받쳐줘야 하기 때문에 색소폰을 연주하다보면 신체도 건강해지고 정신도 맑아진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 색소폰은 누가 봐도 멋지다”고 덧붙였다.

그는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색소폰 앙상블도 화음을 맞춰 함께 부르는 재미가 있다. 나이가 들어 소외되고 어디에 끼기도 어색할 수 있지만 색소폰 앙상블에서는 누구 하나 빠져서도 안 되고 각자 할 일이 있다”며 “혼자가 아닌 함께 해서 좋은 이유다. 음악이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더 일찍 색소폰을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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