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요 칼럼] 품격 있는 리더

2025-12-09 (화) 12:00:00 박영실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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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한창이던 때였다. 한국에서 여행사를 하던 대표의 행보가 회자되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한국의 지방에 있는 여행사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대표는 팬데믹 사태가 표면화되기 전에 고객들에게 항공권 예매를 해주었다. 중국 여섯 명과 북유럽 두 명, 모두 여덟 명에게 표를 판매했다. 코로나 사태가 가시화되면서 갑자기 비행기 운항이 전면 취소되었다. 대표는 그 고객들이 한국에 입국하도록 돕기 위해 책임을 완수했다. 비용은 회사 공금이 아닌 거액의 개인 비용으로 해결했다. 대표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 삼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표는 마음 그릇의 용량 자체가 달랐다. 자기 고객인데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한 일이라며 고객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대표는 재정난으로 더 이상 여행사를 운영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폐업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고객들 일을 해결하는 와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실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전심전력했다. 대표가 어떤 삶의 발자취를 걸어왔을지 가늠할 듯했다. 대표를 보면서 스치는 일이 있었다.

몇 년 전에 필자가 해외 봉사활동을 위해 여행사에서 팀원들과 단체로 항공권을 예매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여행사 직원의 실수로 항공권이 이중으로 예매되었다. 여행사에 여러 차례 연락했는데 여행사 측에서는 전화를 회피했다. 그 일로 필자의 높았던 신용 점수가 갑자기 하락하는 상황이 되었다. 여행사 대표와 담당자는 직원의 실수로 고객이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해외를 자주 다녀야 하는 필자의 가족과 지인들은 여행사와 거리가 멀어졌다. 그 여행사는 무책임한 태도와 책임 회피로 미래의 고객까지 잃은 셈이다. 여행사 대표와 담당자는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눈앞에 있는 이익에만 급급했을 뿐, 멀리 보고 크게 보는 안목이 없었다.


사람은 위기 상황을 마주했을 때 문제 해결 과정에서 그 사람의 인격과 품격이 드러나는 듯하다. 리더의 위기관리 능력은 곧 리더의 품격과 직결된다.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자기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한 한국여행사 대표의 결단과 행동은 보기 드문 일이다. 품격은 그 사람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많은 사람을 세우고 향기롭게 한다. 사람과 상황을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을 품은 사람이 진정한 리더의 품격과 자질을 갖춘 게 아닐까.

유능한 리더는 어느 공동체든 홍수같이 넘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동체와 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는 드물다.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사람보다 일이 우선인 리더와 일보다 사람이 우선인 리더가 있다. 사람보다 일이 우선인 러더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일만 보인다. 일보다 사람이 우선인 리더는 결국 사람과 일 모두를 얻는다. 지혜로운 리더와 우매한 리더의 품격은 무엇에 핵심 가치를 두고 우선순위를 두느냐의 차이에 있다. 품격 있는 리더는 사람을 잃지 않고 개인과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는 비결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박영실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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