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2025-12-02 (화) 08:10:07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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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속에 벼락 몇 개./저게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날.”(장석주의 시 ‘대추 한 알’ 전문)

이 시는 기다림의 소중함을 말한다. 대추 한 알도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다고 웅변한다. 기다림의 미학과 인내의 은유를 배운다. 작은 대추 한 알에도 수많은 사연과 고단한 여정이 서려있음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사람들도 그냥 가볍게 보아 넘기지 않게 된다. 한 사람의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신 예수의 말씀이 파도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성경을 보면 15년, 30년 혹은 40년을 기다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10년의 법칙은 아무것도 아니다. 예수를 위시해서 다윗, 바울은 15년, 혹은 20년 동안을 준비해서 맡겨진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했다. 모세는 그보다 훨씬 더 긴 기간인 80년을 준비하며 기다렸다가 후반 40년을 의미있게 살았다.

하나님은 서둘러 일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택함 받은 사람에게 기다리게 한다. 끈기 있게 기다리는 과정을 통하여 쓰실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검증한다. 검증이란 무엇인가. 진짜와 가짜,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순화와 성화의 과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척박한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리는 동안 노예의 인격이 하나님의 백성의 성품으로 도야(陶冶)되었다. 그 후에 그들은 지금까지 꿈도 꾸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진입했다.

40년의 기다림은 더 나은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매미를 보라. 매미는 유충으로 땅 속에서 7년을 보낸 다음에야 비로소 구태의 허물을 벗는다. 그 후 나무 꼭대기로 올라와 한 여름동안 숲속의 음악가가 된다. 포도나무도 마찬가지다.

풍성한 열매가 그냥 저절로 맺히는 것이 아니다. 산비탈 박토에서 7년 이상 치열한 적응이 이루어 진 후에라야 기다리던 열매는 나타난다. 기다림이란 새로운 존재로 도약하기 위한 구도자의 순례의 과정이다. 잊지 말라. 하나님은 그가 들어 쓰실 사람에겐 무엇보다 오래 참고 기다리는 훈련부터 시키신다.

포도나무 비유는 약삭빠른 산술적 머리가 아닌 손의 수고와 기다림의 인내로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준다. 그대의 포도원이 그 드물다는 명품포도를 산출하기를 원하는가. 널리 인정받는 포도원 명장이 되기를 원하는가. 주어진 기다림의 과정 앞에서 정직, 성실하라. 꽤 부리지 말라. 아브라함의 조카 롯, 사울과 가롯 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재능이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다. 인생을 쉽게 살아보려고 꽤 부리다가 망했다.

아브라함을 보라. 그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매뉴얼대로 정직하고 충성스럽게 살았다. 하나님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순종의 삶을 살았다. 우상의 도시 하란에 들어가서도, 소돔과 고모라의 화려한 문명 앞에서도 아브라함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환경이 어렵다고 하나님이 제시하는 훈련 과정을 그는 그냥 건너뛰지 않았다.

같은 흙으로 빚어 만들었어도 거치는 과정에 따라 그릇에 붙는 이름은 달라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스턴트 과정에 만족하는 사람, 속성과정을 즐기는 사람은 리더는 못 된다. 알폰소 11세는 말했다. “오랜 된 장작을 태워라. 오래 된 책을 읽어라. 오래 된 친구를 가져라. 오래 사고(思考)한 사상을 품어라. 오래 묵상한 기도를 드려라.”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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