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시로 주식 팔아 자금 확보
▶ 올 상반기에만 800억 달러
▶ ATM 기업 투자시 주의해야

기업이 주식을 시장가로 수시 매도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인 ATM 발행이 크게 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ATM 발행 규모가 8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로이터]
지난 1년간 금융시장에서 특정 기업들을 두고 ‘ATM 발행사’(ATM Issuer)라는 표현이 부쩍 늘었다. 여기서 ATM은 자동입출금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At-The-Market’의 줄임말로, 기업이 주식을 시장가로 수시 매도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상장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때는 ‘투자은행’(IB)이 주관하는 대규모 ‘블록세일’ 방식이 흔하다. 하지만 ATM 방식은 정반대다. 기업이 필요할 때마다 원하는 규모만큼 시장에서 직접 주식을 조금씩 내다 파는 구조다. 규모가 작을 수도, 클 수도 있으며, 주식 판매 시점도 기업이 정하는 방식이다.
■ 수시로 주식 팔아 자금 확보기업이 필요할 때 마다 주식을 팔아 현금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일반인이 ATM에서 현금을 찾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기관투자가 대상 데이터 제공업체 베리티데이터의 벤 실버맨 디렉터는 “ATM은 기업이 신속하고 조용하게, 그리고 비용 효율적으로 자본을 조달하는 데 도움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2020년 이후 ATM 발행을 통해 조달된 금액은 무려 3,350억달러에 이른다. 조달 자금 규모가 방대한 것은 물론ATM 발행이 강세장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베리티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ATM 발행 규모는 약 80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증가했다. 팬데믹 이후 이어진 강세장에서 ATM 활용이 급증했다가 시장이 식자 다시 줄었고, 올해는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ATM은 특히 이른바 ‘밈 주식’(Meme Stocks)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소셜미디어에서의 이슈와 개인 투자자들의 대거 유입(또는 이탈)에 따라 주가 변동성이 커지는 종목들로, 마이크로스트래티지, 트럼프 미디어 & 테크놀로지 등의 기업이 여기에 포함된 적이 있다.
■ 2008년 이후 중소기업도 활용2007년까지 ATM 발행은 주로 대형 기업들만 활용했지만, 실제로는 ATM을 자주 이용하지 않았다. 주식을 발행할 때 월가 투자은행을 동원해 기관투자가들에게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는 방식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앞두고 규제 완화 흐름이 거세지면서,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중소형 기업을 대상으로도 ATM 발행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ATM의 장점은 낮은 비용으로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월가 투자은행을 고용해 주식을 판매하려면 은행이 기업 실사를 진행하고 투자자 마케팅도 해야 한다. 반면 ATM은 기업이 SEC에 ‘지속적 주식 매도 계획’을 제출하기만 하면, 필요할 때마다 시장에서 직접 주식을 매도할 수 있다. ATM 발행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기업 분야는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다. 리츠는 과세소득의 90%를 배당 형태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 조달을 지속적으로 외부 투자자들에게 의존해야 한다. 리츠뿐 아니라 바이오테크 등 비 리츠 기업 분야에서도 ATM 활용이 빠르게 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ATM을 활용하는 기업들은 대체로 기업 규모가 작고 수익성이 낮으며, 대형 기관보다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고, 정보 공개가 불투명한 기업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도 지적된 바 있다. 투자 애널리스트들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애널리스트들은 전통적인 방식의 주식 공모를 진행한 기업의 경우보다 ATM 발행 이후 전망을 더 부정적으로 바꾸는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 월가 투자은행도 긍정적월가 투자은행도 ATM 발행에 대해 긍정적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전통적 주식 발행보다 업무량이 적고, 부담해야 할 금융 및 법적 리스크도 훨씬 작기 때문이다. 일반 공모 방식에서는 투자은행이 투자자에게 주식을 팔기 전에 먼저 기업 주식을 ‘인수’(언더라이팅)해야 한다. 만약 해당 기업이 사기 기업으로 드러날 경우 소송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반면 ATM 발행에서는 이러한 위험이 없다. 투자은행은 단순히 수수료만 가져가면 되는 구조다. 또, ATM 발행은 자금난 기업의 숨통을 틔워주기 때문에, 월가가 지속적으로 수수료를 벌어들일 수 있는 구조도 제공한다.
기업들은 주가가 급등한 시점을 골라 ATM을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ATM 이용이 소위 ‘밈 주식’과 강한 상관성이 높다. 밈 주식은 일반적으로 가격 변동성이 매우 크다. 게임스톱, 버진갤럭틱 등 밈 주식으로 분류되는 3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ATM 프로그램이 없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자컴퓨팅, 차세대 원자력, 우주개발 기술을 내세우는 소규모 고위험 테크 기업들을 역시 대부분 ATM발행을 적극 활용한다.
■ ATM 발행 기업 투자 시 주의현금이 필요하다고 해서 기업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ATM 발행이 불투명성을 띤다는 점이며, 투자자들은 주의가 필요하다. 기업이 ATM을 통해 주식을 매각했다는 사실은 사후에 재무제표에만 반영되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이 파악할 길이 없다. 금융업계에서는 ATM 발행을 ‘미묘한 내부정보’(Soft Inside Information)에 비유한다. 경영진은 회사가 언제 주식을 내다팔지 알고 있고, 일부 우선 투자자들에게 할인된 가격에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유상증자는 발행 주식 수가 명확해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얼마나 낮아질 지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ATM은 기업이 수시로 시장에서 주식을 내다 파는 방식이기 때문에, 투자자가 주식 수 변화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과거 ATM 발행 사례를 찾아보면 부동산 업계를 제외하면 성공 사례가 드물다. ATM 발행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면 기업이 왜 자금이 필요한지, 그리고 지분 희석 정도를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 또한 시장에서는 다른 투자자가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