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의 가치관

2025-11-06 (목) 12:00:00 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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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도록 푸르고 높은 하늘아래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주위를 둘러본다. 할 일을 다 끝내고 떠날 채비를 한 잎들이 빨갛게 노랗게, 영원을 향한 그리움을 색칠하다가 한줌씩 땅을 향하고 그 사이로 허둥지둥 살았던 자신의 삶에 허무했던 꿈들이 뿌옇게 흩날려 가고 있다. 이 예쁜 가을이 내게 얼마나 더 남았을까.

올 가을에는 많은 글을 읽으면서 자신은 물론 남을 돌아보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허위가 난무하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선과 악에 대한 분별력을 키우며 디지털시대에 맞는 정보를 접하고 분석하면서 논리적 사고력으로 참된 삶에 대한 지혜를 얻고자 한다.

인간적인 가치관을갖고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식도암으로 타계했다. 게릴라 혁명조직 군부 독재속에서15년간이나 수감과 탈옥생활을 번갈아 하면서 죽을 고비도 넘겼던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관저 대신 농장이 딸린 작고 소박한 시골집에서 오래된 폭스바겐 ‘비틀’을 몰고 다녔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다. 워낙 청빈하고 검소함이 몸에 배었고 국민을 우선시했던 그는 대통령 급여 의 90%를 빈곤퇴치 단체에 기부하면서 “우리 세대의 좌절을 다음 세대에 남기지 말자, 어떤 것도 삶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는 철저한 정치철학과 사상을 가지고 그 나라의 빈곤율과 실업율을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만들어 놓았었다. 항암치료도 거부한 채 진정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고, 도시에 모인 수만명의 애도속에 그는 조용히 떠났다. 독서와 농사에 열정을 보였던 그는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음을 알았던 것이다. “삶에는 가격레벨이 붙어있지 않으니 나는 가난하지 않다” 또 “삶은 아름다운 여행이자 기적이다” 라는 말 가운데 적은 것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삶에서 우리는 너무 부유함에 치우친 삶을 살다보니 인생은 지나가 버린다는 걸 그의 삶 속에서 배웠다.

젊은이들에게는 “인생의 성공은 이기는 게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이라며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누구보다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다간 존경받는 대통령이다.

무히카 대통령을 생각하면 몇 년전에 여행했던 경주 양동마을이 떠오른다. 조용한 마을이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양반마을이고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의 후손들이 살면서 500여년 전통을 이어 가고 있고 25점의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아담하게 조화를 이루었던 평화로운 인상을 받았었다. 언덕에는 양반들의 기와집이 있고 밑으로 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예쁜 집의 대문옆에 높이가 1미터도 안되게 세워진 낮은 굴뚝이 보였는데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춘궁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일부러 낮게 지었다”고 한다.

높이 솟아오른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나는 걸 보면 가난한 평민들이 더 배고파 하고 고통을 주게 될 것이라 여겨 낮은 굴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연기가 낮게 나면 양반집 사람들은 낮게 피어나는 연기로 인해 매우 불편하지만 보릿고개나 흉년이 되면 낮은 굴뚝을 쓰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안 주려는 배려’ 라는 설명에 감동했고 또 양반들이 추수때가 되면 일부러 추수한 농작물을 오래 야적해 놓고 가져갈 수 있게 했다는 사랑의 정신이 깃든 진정한 문화유산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방법을 발견한 사람이다’ 리고 슈바이처는 이야기했다. 배려와 섬김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하고 모든 비난을 해결한다. 얽힌 것을 풀어내고 곤란한 일을 수월하게 하며 암담한 것도 즐겁게 바꿀 수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 때에 인생의 가치관을 다시 생각한다.

<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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