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는 송골매는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몰렸었다. DDT와 같은 농약이 알 껍질을 얇게 만들어 번식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개체수가 회복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송골매는 보호 받고 있는 새다. 귀한 송골매를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웨스트 버지니아다. 하퍼스 페리에 위치한 암벽 ‘메릴랜드 하이츠(Marland Height)’ 는 송골매의 주요 서식지이다.
워싱턴의 산악인들이 포카(POCA: Potomac Climbers’ Academy) 라는 이름으로 활동한지 한 해가 지났다. 겨울이 오기 전 하퍼스 페리(Happer’s Ferry) 의 우뚝 솟은 암벽을 오르기로 했다.
워싱턴의 등산인이라면 하페스 페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메릴랜드 하이츠’를 올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면에 있는 암벽을 타고 오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메릴랜드 하이츠 산은 약 450미터다. 그리고 병풍 같은 바위는 100미터 높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곳을 최초로 올랐던 사람들은 남북전쟁 당시 북군들이었다. 메릴랜드, 버지니아, 웨스트 버지니아가 만나는 이곳은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은 남군의 진격을 막아내고 수도 워싱턴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북군은 산 정상에 요새를 세우고 수많은 대포를 올려다 놓았다. 애브라함 링컨도 이곳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하페스 페리를 방문할 정도였다. 그리고 링컨은 메릴랜드 하이츠 요새를 찾아오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상까지 오르는 것은 실패했다. 경사가 가파르고 산세가 험준했기 때문이다.
하퍼스 페리에서 암벽등반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다. 이곳의 등산가 랍 사보에(Rob Savoye)가 많은 암벽길을 개척했다고 한다. 그는 미 동부지역의 유명한 산악인으로 잘 알려져 있고 또한 오픈 소스 컴퓨팅(FOSS: Free and Open Source Software)의 개척자로도 유명하다. 리눅스 생태계 기반을 다진 핵심적인 인물이다.
우리는 사보에가 만든 두가지 바윗길을 올랐다. ‘하드 업 (Hard up)’과 ‘D 루트’를 선택했다. 전날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바위는 미끄러웠다. 물이 흐르고 있어 예상보다 어려웠다. 물길을 오르고 직벽을 올라서서 3시간 만에 정상에 올랐다. D 루트는 최기용(록파티 산악회), 하드 업은 크리스 김(버지니아대학 가정의학 전문의)이 선등으로 올랐다.
이 암벽은 사인 월(Sign Wall)이라고도 불리운다. 바위 정면에는 새겨진 글씨 때문이다. 1900년대 초반에 “Mennen’s Borated Talcum Toilet Power”라는 광고 문구가 적혀있었다. Menne 라는 회사가 화장용 파우더를 홍보한 것이다. 베이비 파우더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제품이다.
1960년대 하퍼스 페리는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국립공원 안에 남아 있는 페인트 자국을 지워야만 했다. 암벽에 60년 넘게 남았있던 사인은 자연 경관을 훼손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인을 지우는 작업에 동참했다. 사인을 다 지웠다고 생각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문구와 흔적이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이것을 ‘지워도 다시 살아나는 유령같은 존재’ 라 하여 ‘고스트 사인(Ghost Sign)’ 이라 부르게 되었다.
암벽등반은 일반인에게 허용된다. 단 국립공원 사무소에 신고를 해야만 한다. 혹시라도 있을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신고없이 오르다가 적발되면 낭패를 보게된다. 벌금이 수백달러에 달한다. 등반에 신고가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등반 시기를 통제하기 위해서다. 2월부터 7월까지는 등반이 허가되지 않는다. 송골매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송골매의 산란기와 부화기에는 등반을 할 수 없다.
송골매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은 자연환경이 좋다는 것이다. 훗날 다음 세대가 이곳을 등반할 때에는 송골매가 하늘을 가득 채우며 유영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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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훈 미주대한산악연맹 워싱턴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