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바라 존스 동상이 주는 의미

2025-12-30 (화) 07:54:54 허종욱 전 볼티모어대 교수 사회학박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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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연방 의사당 ‘노예해방기념관'(Emancipation Hall)에서 공립학교에서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인도했던 흑인 여성 인권운동가인 바바라 존스(Barbara Rose Johns, 1035-1991) 동상 제막식이 존슨 하원의장등 의회대표들과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 등 주 대표들 그리고 친지들과 관계된 사람들이 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의사당에는 각 주를 대표하는 두 동상이 세워져있다. 버지니아주를 대표해서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과 남북전쟁 남부군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Robert E. Lee) 장군의 동상이 서 있었다. 존스 동상은 몇년전 철거된 리 장군 동상자리에 버지니아주를 대표해서 세워진 것이다. 강대상 옆에서 책을 오른 손으로 높이 올리며 서 있는 8피트 높이의 이 동상은 존슨이 1951년 16살 때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Robert Russa Moton High School in Farmville) 학생들에게 흑인공립학교가 당하고 있는 학교 시설의 차별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공립학교는 흑인과 백인 학교로 분리되어 있었으며 흑인학교의 시설이 백인학교에 비해 매우 뒤쳐져 있었다.

1864년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선언 이후 남부 14개 주들은 흑백은 분리되만 권리는 평등하다는 ‘분리 그러나 평등'(Separate but Equal)의 원리(doctrine)를 내세워 학교, 공원, 극장, 교통수단, 해수욕장 등 공공시설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 수용을 짐 크라우 법(Jim Crow Law)을 통해 ‘관습적인 합법 행위'로 이행했었다. 그러다가 1896년 연방대법원이 ‘플레시 대 퍼거슨 사건'(Plrssy v. Ferguson)에서 공공 장소나 시설에서의 ‘분리 그러나 평등' 원칙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루이지애나주에서 기차여행을 하고 있던 민권운동가 흑인 호머 플레시가 흑인 전용 칸에 머물 것을 거절하고 백인 전용 칸으로 옮겨 탐으로써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었다. 따라서 흑백학교의 분리는 존스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공식적인 합법 행위'였다.


존스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시위당시인 1951년 학생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에 400명의 학생이 등록 했다. 학교 당국은 교육위원회에 늘어난 학생 수를 수용할 수 있는 신축 교사를 요구했으나 전체 백인으로 구성된 교육위원회는 테그종이(tac paper)로 된 가교사를 지어 주었다. 이웃 백인학교는 학생수에 비해 월등히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에 실망한 존스는 그해 4월 23일 45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교육위원 집들을 찾아가 “우리는 새 학교 건물을 원하지 테그종이로 지은 임시교사를 원하지 않는다.”(We want a new school or none. Down with tar-paper school)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외치며 흑백학교 불평등에 대한 항의 시위를 2주 동안 벌였다. 같은 해 5월 23일 민권운동단체(NAACP)가 학생들 가운데 가장 어린 학생의 이름으로 법원에 고소, ‘도로시 대 카운티 교육원회'라는 사건명으로 재판을 받아 최종적으로 연방대법원이 ‘공교육기관에서의 인종분리'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연방대법원이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Brown v. Board of Education) 사건 판결과 더불어 역사적인 판결이 되었으며 따라서 모든 공립학교에서의 인종분리는 인종통합으로 바뀌었다.

시위를 주도했던 존스는 백인들이 주도하는 위협을 여러번 당했다. 백인극단주의단체 KKK(Ku Klux Klan)들이 존스 집 뜰에서 십자가를 불태우며 위협을 하기도 했다. 존스 부모는 존스를 앨라바마주 친척집으로 피신시켰다. 그후 드랙셀대학(Drexel University)에서 도서관학 학사 학위를 받고 필라델피아 시립 학교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결혼도 하여 자녀 5명을 두어 살다가 1991년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존스 동상이 버지니아주를 대표해서 워싱턴 초대 대통령 동상과 나란히 연방 의사당 안에 세워지게 된 데에는 흑인들에게는 물론 한국이민자들을 포함해서 소수민족 이민자들에게도 특별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존스는 16세 고등학교 흑인 여학생으로 미국 역사상 최초로 공립학교에서의 흑백차별법에 항의, 400여 학생들의 시위를 인도하여 연방대법원 법정에로까지 이끌어내어 ‘분리 그러나 평등'의 법을 '만인의 평등의 법으로 이끌어 낸 원동력을 제공한 장본인이라 점에서 그의 동상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혜택을 우리 소수민족 이민자들도 혜택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허종욱 전 볼티모어대 교수 사회학박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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