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쁨이 지나치면 병이 된다

2025-10-29 (수) 08:05:49 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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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기쁨도 병이 된다? 한의학의 ‘심장(心臟)’과 감정의 균형

지난 칼럼에서는 분노, 걱정, 슬픔,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어떻게 우리 몸의 기혈(氣血) 순환을 막고 장부를 손상시켜 자연치유력을 저해하는지 이야기했다. 아마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기쁨’은 어떨까? 기쁨은 우리가 추구하는 긍정적인 감정의 정점인데, 설마 기쁨도 병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

놀랍게도 한의학은 ‘그렇다’고 답한다. 이는 한의학에서 추구하는 경지가 ‘좋은 것의 극대화’가 아닌, ‘균형’에 있기 때문인데,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太過) 모자란(不及) 것만큼이나 해롭다는 동양철학을 꿰뚫는 기본 원칙이, 칠정(七情)의 다스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기쁨은 심장의 감정, 그러나 ‘지나치면’ 독이 된다

한의학에서 일곱 가지 감정(칠정)은 각각 담당하는 장부가 있다. 그중 ‘기쁨(喜)’은 오장육부의 군주, 즉 ‘임금’에 해당하는 ‘심장(心臟)’의 감정이다. 적절한 기쁨과 즐거움은 심장의 기운을 원활하게 하고(心氣和暢), 온몸의 기혈 순환을 촉진시킨다. 마음이 기쁘면 얼굴에 화색이 돌고 몸이 가벼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 기쁨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날 정도로 ‘과도’할 때 발생하는데,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희즉기완(喜則氣緩)’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문자 그대로 ‘지나친 기쁨은 기운을 느슨하게 풀어지게 만든다’는 뜻이다.

‘기완(氣緩)’ 풀어진 현악기 줄과 같은 상태

우리 몸의 기운은 현악기의 줄과 같다. 너무 팽팽하게 긴장하면(분노, 스트레스) 날카로운 소리를 내다 끊어지기 쉽지만(怒則氣上), 반대로 너무 느슨하게 풀어져 버려도(喜則氣緩) 제 소리를 낼 수 없다. 과도한 기쁨은 우리 몸의 기운을 붙잡아두는 긴장감을 와해시켜, 기운이 한곳에 집중되지 못하고 흩어지게 만든다.

현대의학의 시선: ‘행복 심장 증후군’

이러한 한의학적 통찰은 현대의학적으로도 명확히 증명된다. 갑작스러운 큰 기쁨이나 흥분은 교감신경을 극도로 항진시켜 아드레날린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대량 분비시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몸은 극도의 공포를 느낄 때와 극도의 기쁨을 느낄 때 유사한 생리적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최고의 양생은 ‘평정심(平正心)’

한의학은 결코 기쁨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기쁨에 압도당하지 않는 ‘중심’을 강조한다. 자연치유력이 가장 왕성하게 발휘되는 상태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상태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고 평온한 ‘평정(平正)’의 상태다. 이 상태에서 기혈은 막힘도, 흩어짐도 없이 가장 안정적으로 순환한다.

분노와 슬픔에 휩쓸리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이 필요하듯, 큰 기쁨이 찾아왔을 때도 잠시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디디는 지혜가 필요하다. 감정의 양극단을 오가지 않고 그 중심을 지킬 때, 우리 몸의 기운은 가장 안정적으로 순환하며, 내 몸 안의 의사(자연치유력)는 비로소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문의 (703)942-8858

<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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