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도깨비 소굴’뉴욕

2025-10-23 (목) 07:37:04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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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기위해 개찰구 앞에서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내려는데, 아뿔싸- 그만 지갑이 없는 것이 아닌가. 아침에 바지를 다른 것으로 갈아 입으면서 어제 입었던 바지에서 지갑을 옮기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 맞춰 출근 해야 하는데 지하철을 탈 수 없으니 이런 낭패가 또 어디있는가. 그렇다고 지갑을 가지러 뉴저지 집에까지 되돌아 갔다 올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개찰구 옆 부스에 앉아있는 지하철 공사 여직원에게 사정을 하였다. 내일 돈을 갚을테니 개찰구 문을 열어줄 것을 부탁해보았으나 젊은 흑인 여자는 나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였다.


머쓱해진 나는 스타벅스 커피숍에 들어가서 마음씨 좋게생긴 젊은 백인 남자에게 다가가 사정이야기를 했다. 지금 Zelle 앱을 이용하여 바로 송금해 줄테니 5불만 빌려달라고 사정하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맘씨 좋게 생긴 젊은이는 단칼에 거절하였다.

마침 그 옆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앉아있기에 멋적게 다가가 같은 사정이야기를 했더니 한국인인듯한 그 여자도 단칼에 거절하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또 두번, 주변에 있던 다른 두사람으로부터 각각 단칼 거절을 당하였다.

연거퍼 5명으로부터 단칼 거절을 당하고 보니 참으로 난감하여졌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토록 인정머리 없고 야박하단 말인가. 2년전 이 회사 입사 후 이날 이때까지 단 한번도 지각한 적이 없는데 오늘은 꼼짝없이 지각을 하거나 최악의 경우 결근을 하게생긴 것이다.

그러다가 퍼뜩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가게에서 사람들이 스마트폰 앱으로도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 생각난 것이다. 그래서 바로 구글 앱스토어에 들어가 보았더니 ‘구글페이’라는 앱이 있었다.

그것을 다운받아 설치하고 앱을 시행하니 내가 갖고있는 크레딧 카드 목록이 주루륵 화면에 떴다. 그중 하나를 선택하고 지문으로 본인인증을 하니 크레딧 카드 사진이 화면에 떴다. 카드사용 준비 완료! 야호! 드디어지하철을 탈 수 있게된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자리에 앉으니 모든 사람들이 머리에 뿔이나고 눈알이 새빨간 도깨비 악마들 처럼 보였다. 뉴욕 도시전체가 도깨비소굴 같았다. 나도 그동안 남에게 도깨비처럼 굴지는 않았는지...

아무튼 가까스로 출근시간에 맞출 수 있었으니 해피엔딩으로 끝난 셈이지만 어쩐지 입맛이 씁쓰름 했다. 만약 서울에서였다면 어땠을까.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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