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자율 0%라도 집 못 사… LA 등 6개 대도시 “너무 비싸”

2025-10-16 (목) 12:00:00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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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입자에 이자율 소폭 하락은 의미 없어

▶ 모기지 페이먼트, 3년 사이 20%나 급등
▶ 바이어들 ‘몇 년 전에 샀어야’ 후회 많아

이자율 0%라도 집 못 사… LA 등 6개 대도시 “너무 비싸”

연방준비제도가 최근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대다수 주요 도시에서는 치솟는 주택 가격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로이터]

‘연방준비제도’(Fed)가 최근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대다수 주요 도시에서는 치솟는 주택 가격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부동산 정보업체 질로우의 연구에 따르면, 폭등한 주택 가격으로 인해 이자율이 하락하더라도 내 집 여건은 여전히 비현실적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일부 대도시의 경우 이자율이 0%로 떨어져도 지역 평균 가구 소득으로는 주택 구입이 힘든 것으로도 조사됐다. 워싱턴포스트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내 집 마련 현실을 자세히 조명했다.

▲ 이자율 0%라도 못 사

질로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LA를 포함한 6개 대도시를 주택 가격이 ‘매우 비싼’(Unaffordable) 도시로 분류했다. 심지어 이자율이 0%인 무이자 대출을 가정하더라도, 해당 도시의 중위 소득으로는 주택 구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전국적으로도 내 집 마련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재 미 전역의 주택 중간 가격은 41만800달러로, 2019년 대비 약 10만 달러 오른 수준이다.


이 같은 주택 가격 급등이 이자율 상승과 맞물리면서, 수백만 명의 세입자는 내 집 마련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상황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집값이 다소 안정됐지만, 기존에 낮은 이자율로 대출을 받은 주택 소유주들이 집을 팔기를 꺼리면서 매물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 이자율 소폭 하락 ‘무의미’

지난달 연준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며, 올해 안에 추가 인하가 최소 두 차례 더 있을 수 있다고 시사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부양과 차입 비용 절감을 위해 연준에 지속적인 금리 인하 압박을 가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 1기 말기인 2021년 1월, 30년 만기 모기지 이자율은 2.7%까지 떨어진 바 있다.

현재 모기지 이자율은 6.34%로(10월 2일 기준), 트럼프 재집권 직후의 7%보다 낮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일반 주택 구입자 입장에서는 이자 부담이 몇 년 전에 비해 크게 느껴진다. 하버드대 ‘주택연구소’(Joint Center for Housing Studies) 크리스 허버트 소장은 “지금 수준의 집값을 고려하면, 모기지 이자율이 조금 내려간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지적했다.

▲ 페이먼트, 3년 사이 20% 급등

질로우가 워싱턴포스트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샌호세의 주택 중간 가격은 무려 160만 달러, 보스턴은 73만7,436달러, 워싱턴 D.C.는 58만7,158달러에 이른다. 하버드 주택연구소에 따르면, 평균 가격대의 주택을 구입하려면 연소득 12만6,700달러가 필요하다. 이는 2021년 당시 구입에 필요한 소득 7만9,300달러보다 약 60% 높아진 수준이다.

연방통계국의 자료에 따르면, 주택 구입 후 첫 해 평균 모기지 페이먼트 금액은 2021년부터 2024년 사이 20% 늘어나 월 2,225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주택 보험료까지 더하면 부담은 더 커진다. 하버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주택 보험료는 57% 급등했고, 재산세 역시 주택 가치 상승에 따라 급등하고 있다. 이처럼 주택 비용 부담이 급증하면서,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쓰는 ‘비용 부담 가구’(Cost-Burdened)의 비중이 100대 도시 중 93곳에서 상승해, 주택 소유주의 약 4분의 1이 이 기준을 넘어섰다.


▲ 현 이자율로 구입 가능 도시 고작 11개

질로우는 50대 도시를 대상으로, 각 지역 중간 소득 기준에서 모기지 이자율이 어느 수준까지 낮아져야 주택 구매가 감당 가능한 수준이 되는지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현재의 6.34% 수준의 이자율로 주택 구매가 가능한 도시는 피츠버그(집값 22만9,722달러, 소득 7만7,050달러)를 포함해 11곳뿐이었다. 남부의 루이빌, 버밍햄, 멤피스, 중서부의 시카고, 클리블랜드, 디트로이트 등은 비교적 주택 구입 여건이 양호한 것으로 평가됐다.

반면, 보스턴과 시애틀은 이자율이 1% 이하로 떨어져야 중간 소득 가구가 집을 살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뉴욕, 마이애미, 가주의 4개 대도시는 이자율이 0%로 떨어져도 주택 구입이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 몇 년 전에 샀어야…때늦은 후회만

2021년, 모기지 대출 이자율이 사상 최저인 3% 이하로 떨어졌을 당시, 남가주 알타디나에 거주 중인 브릿 본(40) 씨는 아내와 함께 내 집 마련을 시도했다. 본 씨는 LA시 공무원으로, 아내는 가족상담 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나름 예산도 치밀하게 짜고 여러 부동산 에이전트와 만나 상담도 받아봤지만, 학자금 대출 상환, 차량 사고, 산불 피해 등 예기치 못한 지출이 이어지며 내 집 마련 계획을 접어야 했다. 부부는 “그때가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던 것 같다”라며 “이젠 집을 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진다”라고 아쉬워하고 있다. 현재 LA의 주택 중간 가격은 약 97만2,837달러로 100만 달러에 육박했다.

플로리다 올랜도에 거주하는 마케팅 전문가 마이크 멀레인 부부는 30만~45만 달러 사이의 주택을 찾고 있다. 매주 오픈하우스를 방문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내 집 마련 현실에 좌절감만 느끼고 있다. 플로리다는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가 잦고, 이로 인한 수리 비용과 보험료, 관리비 상승까지 겹쳐 주택 비용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멀레인 부부는 “요즘 같은 이자율 수준에서는 집을 사기보다 임대가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라고 느끼고 있다.

▲ 매물 부족…또 다른 문제

주택 공급 부족이 주택 시장의 또 다른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낮은 이자율로 대출받은 기존 주택 소유자들이 집을 팔기를 꺼리면서 시장에 나오는 매물이 줄고 있다. 보스턴대 아담 구렌 경제학 교수는 “모기지 이자율이 크게 낮아지지 않으면 집값 부담을 낮추기는 어렵다”라며 “연준의 금리 정책만으로는 매물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전국주택건설업협회’(NAHB)의 로버트 디에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인하는 건설업자들이 토지를 구입하고 주택을 짓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긍정적”이라면서도 “20년에 걸친 공급 부족이 지금의 문제를 만들었기 때문에 단기적 해결은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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