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년 숙성한 생선으로 만든다고?… 일본서도 찾아오는 스시집

2025-10-15 (수) 12:00:00 장준우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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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준우가 만난 셰프들

▶ 타쿠미곤 권오준 셰프

서울에서 손꼽히는 스시집 가운데 독보적인 행보를 걷는 곳이 있다. 바로 숙성 스시로 유명한 서울 강남구에 있는 '타쿠미곤'이다. 스시 마니아들 사이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동시에 스시집 서열을 매길 때 논외로 분류되는 곳이다. 보통 초밥 위에 올라가는 생선, 즉 네타는 손질 후 길어도 3, 4일 정도 냉장 숙성시킨 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타쿠미곤에서는 1년에서 많게는 3년가량 숙성시킨 네타를 올린 스시를 낸다. 상식을 초월하는 일 같지만 눈앞에 있는 숙성 스시를 한 점 맛보면 의구심은 곧 놀라움으로 바뀐다. 입 안에 비릿한 맛이라든가 기분 나쁜 부정적인 감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생선의 다른 면모을 본 듯하다.

“원래 스시 카운터를 '츠케바'라고 불렀습니다. 뭔가를 절이는 공간이라는 뜻이죠. 스시는 원래 냉장·냉동 기술이 없던 시절 생선을 절여서 보관하고 먹는 방식에서 시작됐어요." 남해에서 잡아올린 전어를 3년간 숙성시킨 스시 한 점을 먹고 놀라는 표정을 짓자 권오준(61) 타쿠미곤 셰프는 웃으며 설명했다. “스시라는 뜻 자체가 숙성이란 의미를 포함합니다. 다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유통이 발달하고 냉동 기술이 들어오면서 신선한 생선을 빠르게 제공하는 게 스시의 본질인 것처럼 바뀌었을 뿐이죠."

■ 숙성은 수분 제거가 핵심


권 셰프가 말하는 장기 숙성 스시는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옛 방식이다. 이미 짧게 숙성시킨 스시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옛 방식이 오히려 낯선 게 됐다. 본고장인 일본에서도 장기 숙성한 스시를 내는 곳은 거의 사라졌다. 오래 묵힌 장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처럼 손이 많이 가고 비효율적인 장기 숙성을 배우려는 젊은 스시인들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숙성의 원리는 간단하지만 과정은 만만찮다. 소금과 식초로 전처리를 한 후 산패를 막기 위해 공기와의 접촉을 최소화시키고 부패를 유발하는 수분을 최대한 제거하는 게 핵심이다. “절인 후 한 번 냉동을 합니다. 보관보다는 세포 조직을 파괴시키기 위해서죠. 해동할 때 수분이 많이 빠져 나오는 원리예요. 해동한 뒤 물기를 닦아낸 뒤에 진공 포장을 해 냉장 보관을 합니다. 그때부터 숙성이 진행되는거죠. 과정을 이렇게 자세히 밝히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숙성 과정에서도 중간중간 상태를 확인하고 수분이 생기면 닦아내는 일을 반복한다. 먹기 좋게 잘 숙성이 되었다 싶을 때 꺼내 맛을 본 후 손님에게 낸다. 마치 오래 숙성시킨 와인이나 장을 다루는 일과 다르지 않다. 모든 종류의 생선을 다 장기 숙성하지는 않는다. 주로 고등어나 전어, 전갱이 같은 등푸른 생선이 대상이다. 오래 숙성될수록 본연의 맛을 뛰어넘는 다채로운 풍미와 색다른 식감을 보여준다.

■ 일본서도 찾는 숙성 스시

권 셰프의 스시 외길은 1994년 서른네 살에 시작됐다. 그는 어렵게 합격한 공무원직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우연히 맛보게 된 스시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당시 일본에도 전통 숙성 스시를 하는 집은 2, 3곳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중 한곳에서 8년을 수련했다. 에도마에 스시(도쿄 정통 스시)의 철학과 기술을 갈고닦은 그는 15년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울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 ‘만요' 총괄 셰프, ‘스시만' 총괄 셰프를 거쳐 2017년 본인의 이름을 걸고 타쿠미곤을 열었다. 숙성 스시를 제대로 선보이겠다는 목표였다.

타쿠미곤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숙성 스시에 대한 세간의 편견과 오해는 지금보다 많았다. ‘홍어처럼 암모니아 냄새가 나거나 비린내가 많이 날 것이다' '먹어보지 않아도 뻔하다'는 반응이었다. 동료 셰프들도 마찬가지였다. “1, 2년 숙성시킨다니까 다 거짓말이라고 했죠. 냉동고에 넣어둔 걸 숙성이라고 말한다고요. 정작 와서 먹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권 셰프는 그들과 싸우는 대신 묵묵히 결과물로 보여줬다.

타쿠미곤의 시그니처인 고등어 스시는 숙성 6개월 이후부터 선보인다. 제대로 맛이 드는 때는 1년 6개월째부터다. “원물의 상태에 따라 맛이 드는 시간이 다 달라요. 오랜 경험에서 얻은 데이터죠." 이제는 일본인조차 본고장에서도 맛보기 힘든 숙성 스시를 맛보려고 타쿠미곤을 찾는다. 주한일본대사관으로부터 2021년 한국 최초로 ‘일본식보급친선대사'로 임명된 그지만 일본 요리의 단순한 복제나 이식이 아닌 한국 식재료로 요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기술은 일본에서 배웠지만 한국에서 요리하고 한국인인 이상 우리 것으로 스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권 셰프는 최고의 스시는 재료에서 비롯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지리산 견불동에서 숙성한 토종 된장으로 만든 미소시루, 스시집에서 거의 쓰지 않는 우럭, 밴댕이 등이 그 결과물이다. 새로운 시도와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곧 활조기를 메뉴에 올릴 계획입니다. 아흔까지 스시를 쥘 생각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제자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장준우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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