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림사 산문에서 손님들 보내는 데 (東林送客處)
달 솟아 환한 산골 원숭이들 고요 깨네 (月出白猿啼)
엉겁결 호계 넘고서 웃음 짓는 원 스님 (別廬山遠笑 何須過虎溪)
위의 글은 “시의 신선(詩仙)”으로 불리는 이백(李白)이 ‘호계삼소(虎溪三笑)’ 설화를 두고 지었다는 한문시를 필자가 우리말 시조의 틀에 담아 번역해 본 것이다. 사자성어 호계삼소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널리 알려진 옛일로서, 선(禪)의 멋를 담아내는 이야기로도 통한다. 거기에서의 웃음은 당사자의 삶과 깨달음 및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을 보인다. 이른바 삶의 질을 높이며 즐겁게 한다.
이 전설의 유래는, 중국 동진시대의 고승 혜원(慧遠)과 유학자 도연명 및 도사 육수정 사이에 얽힌 일화에서 비롯된다. 혜원스님은 여산 동림사에 머물며 바깥세상과 멀리하려 애썼으나 저들이 방문했을 때 회포를 나누었고, 그들이 떠날 때 배웅차 사찰 경계를 이루는 호계(虎溪)에 이르러, 세상과 연결되는 산문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떠올린다. 하지만 세 사람은 이야기 도중에 이미 그 지경에 이르렀음을 깨닫고 동시에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 ‘삼소(三笑)’의 정경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며, 우정과 영적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웃음에는 격의 없이 종교를 초월한 공감과 인간의 설정을 넘어선 자유와 해탈의 정신이 담겨 있다. 혜원의 경계는 자율의 관념적 습관이었으나, 세 사람이 함께 웃는 순간 그 한계는 사라지고 무애자재가 된다. 이는 선에서 강조하는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의 도리와 자유 및 초월을 보여주는 것이다.
호계삼소의 이야기는 동아시아 문학, 회화, 건축 등 다양한 예술 작품에 등장한다. 이를테면, 문인화에서 세 사람이 호계에 선 모습은 자연과 인간 문화의 조화를 상징하며, 웃음의 함축적 멋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 장면은 종종 은거와 탈속, 자연으로의 회귀, 그리고 영성적 자유를 표현하는 소재로 활용되어 왔다. 그 정황은 현대에도 많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수많은 경계와 규칙 및 자기중심적 목표에 이끌려 살아가는데, 때로는 그 경계가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너무 집착하다 보면 자신의 자유와 가능성을 제한하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이때 호계삼소의 순간을 떠올려 보면, 자기 경계 너머로 나아가서 이웃과 공감하며 무심히 집착을 내려놓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친구나 동료 등의 관계에서 ‘삼소’의 정신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때로는 정해진 틀을 깨고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으면, 그 순간이 곧 화합의 기회가 되고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된다.
호계삼소의 울림은 단순한 고사 전설에 머물지 않고, 각자의 삶과 내면에 영감을 준다. 경계를 설정하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태도, 우정과 연대의 힘, 그리고 웃음 속에서 피어나는 자유와 평화 정신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시대가 바뀌어도 퇴색되지 않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뜻깊은 시사를 전한다. 경계를 넘어 서로를 신뢰하며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다면, 그곳에야말로 인연들 사이에 진정한 소통과 우애가 꽃피고, 조화와 자비, 그리고 깨달음의 길이 열린다. 이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함의를 지닌 고전으로, 현대 사회 여러 영역에서 그 가치를 재조명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신분과 이념의 경계 및 처지를 초월한 창작의 자유와 협력, 실험정신으로 활용될 수 있다.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와 창의적 시도 등에서 그 일화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이질적 배경의 참여자들 사이에 진정한 소통과 협업의 촉진제로 기능할 수 있다.
다종교 사회에서 삼소 문화는 이웃들이 서로 존중하고 협조하는 선례로 매우 필요한 실정이다. 관점과 경험이 다른 개인 및 집단들이 상호 이해와 공존의 가치를 실천할 때, 경계와 차별을 넘어서 사회 공동 목표와 조화에 이르기 위해 그 정신을 활용할 수 있겠다.
과거에는 삼소가 이른바 동양삼교로 불리는 유불도(儒佛道)의 일치 사례로도 잘 쓰여왔지만, 미국에서는 그리스도교를 포함하여, 여러 세계종교 수행자들이 나름 그 가치와 의미를 되살려 보면 좋을 것이다. 또한, 명상 심리 치료 및 상담 등에서 삼소가 상징하는 자유와 공감에서 드러나는 웃음의 힘은 마음의 긴장을 완화하고 진정한 소통을 가능케 하여, 다양한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정한 인간 교유의 기쁨은 번잡한 현실 상황 속에서 여유롭고 조화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여름 안거 해제를 하고 산문을 나서는 운수납자(雲水衲子)의 기분으로, 벗들과 좋은 인연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기대하며, 옛이야기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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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월 워싱턴무량사 회주 동국대 불교학과 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