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 중 견제 동참 요구할까⋯ ‘민감 의제’ 줄다리기

2025-08-23 (토) 12:00:00 조영빈·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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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요구 ‘국방비 증액’ 규모 협의
▶ ‘마스가’ 꺼내 비용·속도 조절할 듯

▶ “미중 분쟁 직접 개입, 한 입장 아냐”
▶ 한 ‘원자력협정 개정’ 중장기 추진
▶ 북미·남북 대화 지지 확보도 중요
▶ 3단계 비핵화 로드맵 논의 가능성

정부가 25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첫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민감 의제에 관한 변수 관리에 돌입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등 통상 분야 협상 당국자가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워싱턴을 찾은 데 이어 한일 정상회담(23일) 수행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던 조현 외교부 장관까지 방미 길에 오르면서다. 양국 첫 정상 회담인 만큼 양측이 각각 중시하는 의제를 둘러싼 협상 줄다리기가 물밑에서 막판까지 펼쳐지고 있는 양상이다.

조 장관은 22일 워싱턴에 도착, 정상회담 의제 등에 대한 최종 조율에 나섰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여러 가지로 좀 더 조율할 부분이 있다”며 “더 긴밀한 조율을 위해 (조 장관이) 일본에 가지 않고 바로 미국으로 출국했다”고 밝혔다. 외교가는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제시할 최대 화두인 ‘동맹 현대화’를 둘러싼 추가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동맹 현대화’는 대북 억제에 주력했던 동맹 군사력을 대(對)중국 견제로 확장하자는 미국 측 요구가 담긴 의제다. 한국의 국방비 증액, 주한미군 역할·규모 조정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한국 정부 역시 중국 견제를 1순위 목표로 한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 재편 작업에 따른 주한미군 역할 변화 자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도 22일 기자회견에서 “한미 안보동맹 현대화는 연합 방위태세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한국의 동맹 현대화에 대한 공개적 지지 입장을 이번 정상회담에서 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도 중국 견제에 동참한다’는 점을 ‘명시’하자는 미국 측 요구가 있을 경우, 이는 한국으로선 수용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미동맹 안정화에 이어 한중관계 관리에도 공을 들여야 할 이재명 정부로선 동맹 현대화에 대한 미국 측 요구를 일단 수용하되, 중국의 반발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소식통은 “미중 간 분쟁에 한국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국의 국방비 증액 규모도 이번 회담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 2.6% 수준인 한국 국방비를 5% 수준으로 높일 것을 요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 정부는 국방비 예산의 점진적 증액을 약속함과 동시에 미국산 무기 구매·조선업 협력에 따른 비용을 국방비 증액분에 합산해 미측 요구에 호응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동맹 현대화가 미국의 동맹 청구서라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은 한국 측이 내밀 청구서가 될 전망이다. 현행 협정은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하고 저농축 우라늄 생산 역시 미국과의 협의 없이는 하지 못하게 돼 있다. 원전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이에 이번 회담에서 한국은 미국의 동맹 현대화 요구에 호응하는 만큼 미국도 한국의 원전 산업 경쟁력 강화에 힘을 보태달라는 논리로 설득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이에 곧바로 동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비확산 체제 유지에 완고한 입장인 미국으로선 한국이 핵 잠재력 확보를 시도하고 있다고 판단할 공산이 크다. 정부로선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일단 협정 개정 문제를 공식 의제화한 뒤 중장기적 과제로 두고 추진하게 될 전망이다.

‘대북 관여’ 역시 한국이 적극적으로 다룰 의제로 꼽힌다. 북한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남측의 대화 제의를 전면 거부하고 있는 반면 북미 협상 여지는 열어두고 있다. 이재명 정부로선 차후 대북 협상 국면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북미 대화 재개에 개입하는 동시에 남북대화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보해야 할 입장이다.

특히 이 대통령은 방미에 앞서 가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핵·미사일 동결→축소→폐기’의 3단계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했다. 위 실장은 “(3단계 접근법에 대한) 한미 간 세부적 차이는 있지만 큰 틀의 공감대가 있다”고 해 이번 회담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북한 비핵화라는 기존 목표보다 북한의 핵능력을 인정한 가운데 치러지는 ‘군축 협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역시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북측 입장을 고려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조영빈·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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