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갤럽에서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음주율이 54%로, 1939년 조사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과반수 이상(53%)이 ‘적당한 음주도 건강에 해롭다’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특히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술에 의존하지 않고도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을 지향하는 소버(sober) 문화와 웰빙 지향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미국인들에게 술은 더 이상 사교적 필수품이 아니며, 일부는 생산성을 저해하는 장애물로까지 여기고 있는 것이다. 미국 사회 전반에서 술과 관련된 관습이 점차 약화되는 흐름은, 건강과 자기 관리 개인적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사회 문화적 전환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반면 미주 한인사회에서 술은 조금 더 가까이 있는 느낌이다. LA 한인타운을 포함해 남가주 곳곳에 분포한 한인 상권은 ‘한국적인 술 문화가 살아 있는 공간’으로 꼽힌다. 한국식 소주방, 노래방, 호프집, 식당 등은 미국 주류사회보다 훨씬 관대하고 적극적인 음주 문화를 재현한다. 여기에 음주에서 파생되는 향락적 요소까지 더해지며, 한인타운은 단순한 식문화 공간을 넘어 한국적 음주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무대가 되고 있다.
실제로 LA 한인타운에서는 한인 학생들이 많이 재학 중인 초등학교 앞에도 술집이 줄지어 있고, 주택가 인근의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은 대형 쇼핑몰에도 술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음주 문화를 즐기는 한국인의 기질에 매료된 타인종 방문객들은 멋지게 차려입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린 뒤, 한국 전통 안주와 함께 술을 즐기며 한인타운의 밤을 만끽한다. 이러한 모습은 이제 전혀 낯설지 않은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술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가 전성기를 맞고 있다. 예능, 토크쇼, 먹방 등에서 연예인들은 실제로 취한 모습까지 숨김없이 공개하며, 솔직함과 친밀감을 소비의 가치로 삼는다. 탑 개그맨이 방송에서 술을 마시다 비틀거리는 장면을 보고 시청자는 웃음을 짓는고, 아이돌 가수가 방송에서 술을 마시며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팬들은 인간적인 매력에 빠진다. 한국에서 술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관계와 정서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존재한다.
이러한 술 관련 콘텐츠의 소비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사회적 친밀감과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는 문화적 장치로 작용한다. 술을 통한 유대 강화, 즉 ‘술이 있어야 속마음을 열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한국 사회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술에 대한 관대한 인식은 법적 판단에도 영향을 미쳐, 술을 마신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받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는 처벌이 오히려 가중되는 미국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나고 성장한 2~3세 한인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한국의 술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한인 2~3세들이 한·미 양국의 문화를 오가며 균형을 맞춰야 하는 부분이 결코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겠지만, 그중에서도 술 문화는 양국 문화의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역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술에 관대한 한국 문화와 절제가 중요시되가고 있는 미국 사회 사이에서, 미주 한인 사회는 분명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술은 한인들의 정체성과 공동체를 이어주는 필수 요소인가, 아니면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관계 맺기 방식을 새롭게 설계해야 할 시점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한인사회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고, 또 그 답을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 정체성과 건강,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이 결정될 것이다. 술 문화를 단순한 소비나 관습의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고,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공감하며 책임질 수 있는 방식으로 재구성할 때, 미주 한인사회는 두 문화의 장점을 모두 흡수하며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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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경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