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꿰렌시아’

2025-08-05 (화) 08:11:06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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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사들과 밀고 당기는 생사 게임을 하다가 소가 지쳐 좌절했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전략이 있다. 꿰렌시아(Querencia)로 피하는 것이다. 투우장에 들어 온 소는 꿰렌시아가 어디에 있는지 직관으로 안다.

지진이나 쓰나미가 밀려오기 전에 그 진동을 미리 감지하고 산으로 피하는 동물의 귀소본능과 같다. 아무리 투우사에게 치열하게 쫓기던 소라도 일단 꿰렌시아의 영역 안에 들어가면 지고(至高)의 평안과 안전을 느낀다.

그곳에서 헐떡이던 숨을 고르고 불안감과 위기의식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회복한다. (헤밍웨이의 ‘오후의 죽음’ 중에서)


소에게 꿰렌시아는 어머니 자궁속의 태아와 같다. 그곳에서 소는 신비한 생명의 접촉을 체험하고 돌연 거듭난다. 새롭게 도약한다. 꿰렌시아는 소가 단순히 숨을 고르는 휴식 장소가 아니다. 위기 때마다 올랐던 시내 산이 모세에게 거룩한 성소(聖所)이었듯이 소에게도 그 곳은 일종의 성소다.

투우사가 꿰렌시아 안으로 무례하게 진입하면 소는 모욕감을 느끼고 사납게 반격한다. 투우 경기의 결과는 소가 필요할 때 마다 꿰렌시아에 가서 충분히 쉬고 회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1973년 10월 6일, 중동의 판도를 바꾼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의 욤키퍼(Yom Kippur) 대속죄일로 금식절기가 시작하는 날이다. 당시 아랍 동맹군은 초현대식 소련제 탱크와 미사일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급습했다.

전쟁은 다수의 예상을 뒤엎고 보름 만에 이스라엘의 대승으로 끝났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스라엘의 승리 비결은 대속죄일 기간 동안 성전에 조용히 머물며 기도한 ‘침묵의 힘’ 때문이라고 밝혀졌다. 아랍 동맹군의 청천벽력과 같은 기습공격이 이스라엘에 엄청난 파괴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풍전등하의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의 반격의 힘은 신앙적, 전술적 차원에서 탁월했다.

욤키퍼 금식 기간이 끝난 직후 전장에 나온 레세프(Reshef) 탱크부대 사령관은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참모회의를 가졌다. 레세프 장군은 적군의 약점의 자리를 정확히 공격했고 전쟁에 승리했다.

투우경기장의 소가 위기를 돌파하기위해 자기만의 평안의 장소를 찾듯이, 적진 한 복판 시글락에서 절대 절명의 위기를 만난 다윗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침묵기도 하듯이, 아랍 연합군에게 기습당한 이스라엘 군인과 백성이 욤키퍼 금식기도에 침잠한 일들은 모두 ‘꿰렌시아’의 모범이다.

꿰렌시아는 도피행위나 폐쇄 행위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꿰렌시아는 하나님이 나를 가르치시고 말씀하시도록 나를 개방하고 비우는 능동적 성결예식이다. 꿰렌시아는 장소의 개념보다 시간의 개념이다.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 온 바쁘고 무질서한 세상의 문을 잠간 닫아 내리고 내면의 영혼이 활동할 수 있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꿰렌시아다.

깊은 기도를 원하는가. 살아있는 영성을 원하는가. 탁월한 섬김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추구하는가. 예수님처럼 때때로 홀로 있으라. 그곳에서 하나님과 독대하라. 심연 속에 임하는 지고한 살롬(shalom)을 누리라. 꿰렌시아의 삶을 살라. 4세기 사막의 교부였던 성 안토니(St. Antony)는 말했다. “불이 붙으려면 먼저 건조하게 되어야 한다. 침묵기도는 영혼을 건조시키는 작업이다.” 꿰렌시아는 우리를 역주체(逆主體)의 침묵기도로 이끈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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