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트라디바리우스 이야기

2025-07-23 (수) 12:00:00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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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디바리우스는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세인의 관심을 끄는 화제의 명기다. 경매에서 최고가에 팔렸다든가, 어느 바이올리니스트가 분실 또는 도난을 당했다든가, 악기제작의 비밀 등에 관한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 보도된 이야기들도 꽤나 흥미롭다.

지난 2월 1714년산 ‘요하임 마’(Joachim-Ma)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소더비 경매에서 1,150만 달러에 팔렸다는 소식이 회자됐다. 19세기 명연주자 요제프 요하임의 소유였으며 그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초연했던 역사를 갖고 있는 이 바이올린은 1967년 중국계미국인 시혼 마가 구입해 2009년까지 연주하다가 사후 모교인 뉴잉글랜드 콘저바토리에 기부했다. 학교 측은 그동안 몇몇 학생들에게 1~2년씩 연주 기회를 제공해오다 이번에 장학금 마련을 위해 경매에 내놓은 것이다. 구매자가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음악계에 따르면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경매 최고가 기록은 2011년 ‘레이디 블런트’로 1,590만달러에 니폰 음악재단에 낙찰됐다. 하지만 경매 밖에서 이루어지는 거래가 더 많은데, 전설적인 비르투오소들이 소유했던 바이올린은 거의 2,000만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요하임 마’가 최고 기록을 깨리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예상외로 낮은 가격에 팔렸다.


지난주 나온 뉴스는 나치에게 약탈되어 오랫동안 실종됐던 ‘멘델스존’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스텔라’라는 이름으로 신분이 변조되어 사용돼왔음이 밝혀졌다는 소식이다.

원소유주인 멘델스존-본케 가족은 그동안 이 바이올린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행방이 묘연해 거의 포기상태였다. 그러던 중 매의 눈을 가진 한 전문가가 2018년 도쿄에서 열린 스트라디바리우스 전시회의 사진들을 보다가 ‘멘델스존’과 똑같아 보이는 바이올린을 발견했다. 색깔과 모양은 물론이고 몸체의 나뭇결과 무늬, 상처와 흠집의 위치들까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세계에 600여개밖에 없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악기마다 소유자와 연주자 족보는 물론, 고유한 이름과 특징, 앞판 뒤판 옆판 목 부분의 정밀한 사진이 등록돼있어 사실상 모조가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이 ‘스텔라’의 출처를 조사한 결과 이 바이올린은 30년전 파리에서 처음 나타났는데 아무도 ‘멘델스존’으로 알아보지 못했다. 이후 유럽의 여러 악기상을 거치는 동안 “네덜란드의 귀족가문이 프랑스혁명 시기부터 소유해온 악기”라는 진품인증서가 만들어졌고, 이를 2005년 일본의 바이올리니스트 에이진 니무라(54)가 구입했다.

그런데 니무라는 자신의 바이올린과 ‘멘델스존’의 연관성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호사를 내세워 학자들과의 대화는 물론, 멘델스존-본케 후손들과의 협상도 거부하고 있다. 아마도 약탈된 유물은 원 소유자나 후손들에게 돌려주도록 하는 국제적 압력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스트라디바리우스 뉴스는 이 명기의 뛰어난 음색의 비밀이 목재를 벌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용된 화학물질 때문이라는 연구결과에 관한 것이다. 타이완대학교 국제 연구팀은 300년 전 이탈리아 크레모나의 바이올린 명장들인 아마티,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 공방의 가문비나무와 단풍나무 샘플을 분석한 결과, 목재가 공격적인 화학처리를 거쳤으며 이것이 훌륭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는 40년 전, 텍사스 A&M대학교 조셉 나기바리 교수의 이론과 같은 것으로, 그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독특한 소리는 제작과정뿐 아니라 목재 처리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는 2006년 ‘네이처’지에 발표되어 국제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첨단 테크놀로지 시대에도 스트라디바리우스 제작의 비밀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스트라디바리는 자신이 원하는 음색을 만들기 위해 나무의 재료와 사이즈와 두께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연구했으며 당시에는 특허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비밀로 유지했다. 지금은 많은 연구를 통해 당시 유럽이 소빙하기였던 기후조건과 나무의 강도, 니스광택, 곰팡이처리, 섬세한 제작기술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현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조슈아 벨, 이츠학 펄만, 레이 첸, 길 샤함, 재닌 얀센 등이 있고 한국인 중에는 제니퍼 고, 랜덜 구스비, 김민진, 한수진, 김계희, 클라라 주미 강 등이 있다. 직접 소유한 사람도 있지만 너무 고가이기 때문에 재단이나 기업, 독지가가 구입하여 대여해준 경우가 더 많다.

그런 한편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쌍벽을 이루는 과르네리 델 제수를 선호하는 연주자들도 많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여성적이고 섬세한 음색을 내는데 반해 남성적이면서 풍부한 울림을 가진 과르네리는 약 200개가 존재하는데 그 희소성 때문에 오히려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니콜로 파가니니의 동반자였고, 야샤 하이페츠, 예후디 메누힌, 아이작 스턴이 사랑했으며 정경화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팔아서 과르네리를 샀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핀커스 주커만, 새라 장, 양인모, 김봄소리도 이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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