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안드로메다 은하 이야기

2025-07-22 (화) 12:00:00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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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라면 대부분 최근에 나온 메모리칩이 장착된 전자 기기를 떠올리지만 사실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17세기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단지 그 때는 기계가 아니라 덧셈과 뺄셈 등 계산을 하는 사람을 뜻했다.

이는 단순 노동직이어서 여성을 채용하는 경우도 흔했다. 그중 한 명에 헨리에타 스완 레빗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1868년 매사추세츠 랭캐스터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래드클리프 대학을 나온 후 하버드 천문대에서 인간 컴퓨터로 일했다.

그녀가 맡은 일은 밤 하늘의 별 사진을 보고 별들의 위치와 밝기를 일일이 적는 일이었다. 지루하기 한이 없는 이 일을 하면서 그녀는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주기적으로 밝기가 변하는 케페이드 변광성의 경우 별의 밝기와 밝고 어두움의 변화 주기 사이에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레빗의 법칙’)을 알아낸 것이다.


이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별의 거리를 측정하는 유일한 방법은 ‘연주 시차’(stellar parallax) 뿐이었다. ‘연주 시차’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면서 여름일 때와 겨울일 때 별의 위치를 측정하면서 나온 미세한 차이로 여름일 때와 겨울일 때 지구의 위치가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는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각도차를 측정하면 별까지의 거리 계산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방식은 별의 거리가 조금만 멀어도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반면 변광성을 이용한 거리 측정은 변광성 주기를 이용해 절대 광도 계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실제로 관측된 광도와 비교해 멀리 떨어진 별이라도 정확한 거리를 산출해 낼 수 있다.

이 ‘레빗의 법칙’이 우주의 실체를 밝히는데 기여한 공은 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치지 않다. 1920년 미국에서 천문학계를 대표하는 할로우 섀플리와 히버 커티스는 당시 ‘안드로메다 성운’이라 불리던 희미한 물체가 은하계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대논쟁’이란 이름이 붙은 토론에서 섀플리는 우주에 은하는 하나뿐이며 따라서 ‘안드로메다 성운’도 우리 은하계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반면 커티스는 이것은 우리 은하와 마찬가지로 별개의 은하라고 맞섰다.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LA 뒷산 마운트 윌슨 천문대에서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고 있던 에드윈 허블이었다. 그는 20년대 후반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케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했고 이를 근거로 안드로메다의 거리를 측정했으며 이는 우리 은하의 일부로 보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음을 입증했다.

이로써 우리 은하는 우주 유일이 아니라 수많은 은하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허블은 레빗이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며 그녀를 추천했고 스웨덴 한림원도 1925년 후보로 지명하려 했으나 그녀가 일찍 암으로 죽는 바람에 이뤄지지 못했다.

그 후 허블은 우주에는 수많은 은하가 있고 이들이 피관측체가 관측자로부터 멀어질 때 빛의 파장이 길어지는 ‘적색 편이’ 현상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그의 주장은 수많은 관측을 통해 확인됐고 이제는 과거 우주가 한 점에서 출발했다는 ‘빅 뱅 이론’은 정설로 굳어져 있다.

미국은 1990년 허블의 공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허블 망원경’을 우주로 쏘아 올렸고 이 망원경은 지금까지 지상에서는 불가능한 선명한 별들의 사진을 지구로 보내오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허블과 인연이 깊고 250만 광년 떨어진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 은하 안드로메다에 깊은 관심을 갖고 사진을 찍어 왔다. 허블은 관측 폭이 좁아 한번에 다 찍을 수 없기 때문에 1천회 이상 반복해 촬영했으며 이런 방식으로 안드로메다 은하에 있는 별 2억개 이상을 관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별은 최소 1천억개 이상으로 추정되며 그런 은하가 우주에는 최소 1천억개, 많게는 2조개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 수많은 은하의 하나인 우리 은하의 그 수많은 별들의 하나인 태양 주위를 도는 작은 혹성에 살고 있는 인간이 우주에 존재하는 별과 은하의 수를 세고, 우주의 기원과 종말을 생각해 낸다는 것이 대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많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한없이 겸손해지기도 한다.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지금까지 허블이 보내온 안드로메다 은하의 모습을 특집으로 내보냈다. 찬란하고 광대한 이웃 은하의 모습을 바라보면 아무리 대단한 인간도, 아무리 커다란 근심 걱정도, 사실은 별 게 아니란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별들에게는 어지러운 세상을 사는 우리를 달래주는 특별한 힘이 있는 모양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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