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한 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65%에 이르고 코스피 지수는 3년 여만에 3천선을 넘으며 올 들어 세계 1위의 상승폭을 기록하고 있다. 겉으로는 대한민국이 어처구니 없는 계엄과 탄핵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지금 한국은 국가 생존이 걸린 중대한 여러 위기에 직면해 있다. 첫째는 앞으로 국민을 먹여살릴 첨단 산업과 이를 뒷받침할 교육, 국가 경쟁력이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 대학원(IMD)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1년만에 20위에서 27위로 7 단계 떨어졌다. 직접적인 원인은 계엄으로 인한 사회 혼란이지만 저출산, 고령화, 노동 생산성 악화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불안정 50위에서 60위, 기업 효율성 23위에서 44위, 대기업 경쟁력 41위에서 57위 등 모두 큰 폭으로 하락했다. 특히 디지털 기술 인력은 세계 최하위 수준인 59위에 그쳤다. 장기간의 대학 등록금 동결로 교육과 연구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대학은 글로벌 경쟁력 순위에서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IMD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까지 세계 39위이던 국내 대학 경쟁력은 2023년에는 49위로 떨어졌다.
그나마 이렇게 배출된 인재들도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시카고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대학원을 나온 AI 인재의 40%가 해외에 취업했다. 똑똑한 학생들이 안정적이면서 장기적으로 고수입이 보장되는 의대로 몰리면서 정작 나라의 먹거리를 책임질 공대를 기피하는 현상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 때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불리던 삼성전자는 최첨단 메모리 분야에서 대만의 TSMC와 시장 점유율이 60%나 벌어지고 주가도 한 때 4만원대까지 떨어졌다 겨우 6만 선을 회복한 상태다.
두번째 파도는 안보 지형의 변화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늘어나고 대륙간 탄도탄(ICBM) 기술이 진화하는데 비례해 한국이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미국 핵 우산에 대한 신뢰는 하락하고 있다. 1961년 프랑스의 드골은 미국의 케네디와 만나 미국은 뉴욕을 희생해 가면서 파리를 지켜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1966년 독자적으로 핵을 개발해 자타가 공인하는 핵 보유국이 됐다.
지금 미국의 약속만 믿고 핵을 넘겨줬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국토가 거덜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핵 개발 직전 미군의 공습으로 벙커버스터를 맞은 이란의 사례는 핵 없는 나라의 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직은 도달하지 못했지만 북한이 핵 탄두를 장착한 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잠수함 발사 탄도탄(SLBM)을 완성하고 뉴욕과 워싱턴을 위협한다면 미국이 이를 감수하고 서울을 지켜줄 가능성은 낮다. 그런데도 한국의 정치권은 미국의 눈치만 보며 이 문제에 대응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 지형은 시간이 갈수록 한국에 불리하게 전개될 것이다.
어쩌면 이들보다 장기적으로 한국의 존립을 더 위협하는 것은 급속한 인구 감소다. 최근 나온 한반도 미래 인구 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저출산 추세가 계속될 경우 2125년 한국 인구는 지금의 15% 수준인 750만으로 떨어질 수 있고 생산 연령 인구 100명이 140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최상의 시나리오 하에서도 100년 후 인구는 지금의 1/3인 1천500만 수준에 그친다.
인구가 줄면 줄수록 아이를 낳을 여성 수도 감소하기 때문에 전체 인구는 가속적으로 줄어든다. 이에 따라 인구 구조는 2075년 고령자가 많고 아동이 적은 ‘가오리형’에서 2125년에는 전연령의 인구가 적은 ‘코브라형’으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들어 출산율이 소폭 반등하기는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출생아는 수는 23만8천명으로 전년에 비해 8천명이 늘었다. 출생아 수가 증가한 것은 9년만에 처음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초저 출산과 이로 인한 인구 소멸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왜 이렇게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지에 대한 답을 나와 있다. 유치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엄청나게 쏟아부어야 하는 교육비, 그렇게 하고도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 치솟는 주거비 등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커 출산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사교육비 없이도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면 최소한도의 인간적인 생활이 보장되는 일자리와 주거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듯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한국만큼 이 문제가 심각한 나라도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온국민의 비상한 각오가 필요해 보인다. 한국이 이런 숱한 난제를 극복하고 부강하고 살기 좋은 나라로 도약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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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