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삼성’ 이라는 이름

2025-07-2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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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설마 했다. 강남 서울 삼성 병원의 간호교육팀에서 온 이멜. 많은 브런치 작가 중에서 할머니인 나를? 하는 합리적 의심. 답을 하며 한국에 나오는 일정을 알렸다. 내게는 소중한 경험이며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도 같았다.

<간호의 가치에 스미다>라는 제목으로 1시간 강의. 질의 응답을 합치면 그보다 좀 길어 질 시간 동안 무슨 메세지를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했다. 간호학과 인문학의 만남. 딸과 손주들의 세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지루한 이미지가 아닌 열린 선배로 다가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2,000병상이 넘는 한국 최고의 병원에서 하는 강의. 준비하는 내내 조심스러웠고,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요즈음처럼 현대화된 컴퓨터와 AI를 이용하는 병원의 근무 상황도 걱정이 됐다. 나 같은 아날로그 시대에 살던 사람이,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를 하느냐고, 젊은 친구들이 반문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우도 생겼다. 그러나 사람 사는 일은 현대화되어 있는 지금이나, 그 옛날이나 비슷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 또한 같아야 한다는 생각.


우리들 삶에 스며 있는 간호의 의미와 가치를 이야기하는 시간. 처음 미국 간호사가 되면서 겪었던 영어와의 싸움. 알게 모르게 늘 내 곁에 존재했던, 보이지 않는 이민자에 대한 차별. ‘극복’ 이외에는 물러설 길이 없었던 시간들.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환자, 즉 사람을 대했는가? 따뜻하게 손잡아 주었고, 마음을 담아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연민의 시선으로 그들을 대했다.

40년 간호사 생활을 1시간에 풀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냈던 사실 하나만 전달되었다면… 누구를 돌보고, 환자와 보호자들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일. 반복되는 식상하고 고단한 일상 같지만 그것이 바로 간호의 본질이고, 그 본질을 잃지 않았을 때, 우린 좋은 간호를 제공하는, 서로에게 스며들어 좋은 의료인이 되어 있을 거라는 이야기로 강의를 마쳤다. 질문도 있었고, 답을 하며, 마음은 많이 편해졌다.

강의를 해야 하는 곳이 삼성, 이라는 이름 때문에 어렵게 느껴졌지만, 그곳이 어디든 나의 진솔한 마음과 태도를 열어 보이면 가까이 다가가 공감할 수 있다. 강의 후 피드백을 받아보며, 그들의 칭찬이 너무 고마웠다. 선배를 대하는 태도 또한 최상인 삼성인들. 나의 이야기 들으며 함께 웃기도 했고, 눈을 맞추기도 했던 시간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강의 후 간호본부원장과 특강을 준비한 교육 팀과 몇 몇이 모여 앉았던 티 타임. 40년 차 간호사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젊은 간호사 후배들의 어깨 토닥토닥 두드려 주며 응원을 보탠다.

강의는 끝났고, 마음 속의 짐도 가벼워졌다. 또 다른 곳에서 다음 강의들을 준비하며 솔 향기 가득한 해변을 걷는다. 내 인생, 나쁘지 않았다고. 치열한 젊음의 시간이 있어, 오늘의 내가 있고, 이렇게 지는 노을처럼 환한 진분홍색으로 익어 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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