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평선] 기안84의 오체투지

2025-07-08 (화) 12:00:00 박일근 / 한국일보 수석 논설위원
크게 작게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4’ 포스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대고 까부는 내 자신을 낮춰줬다.”

MBC 예능 프로그램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4’(태계일주)에서 기안84가 티베트 불교 성지 샹그릴라에서 오체투지에 대해 한 말이다. 두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 다섯 곳을 땅바닥에 닿도록 하는 큰절이 오체투지다. 기안84는 자신의 버킷리스트이자 태계일주 마지막 일정을 마친 뒤 그동안 자기 취향에 묵묵히 맞춰준 이시언과 덱스 등에게 고마운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훔쳤다. 함께 한 빠니보틀도 “하다 보니 인생이랑 비슷했다”며 “인생도 빨리하는 게 목적이 아니고, 5보를 걷든 3보를 걷든 중간에 쉬든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다”고 스스로 찾은 답을 밝혔다. 날것과 진심이 묻어나는 이런 장면들은 시청자에게도 울림을 줬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한국인이 좋아하는 방송 예능 1위에 올랐다.


■오체투지는 온몸을 대지 위에 내던지는 수행법이다. 선 자세로 합장한 뒤 두 손을 짚고 무릎을 꿇으며 앞으로 완전히 엎드린다. 이마가 거칠고 차가운 맨땅에 닿을 때까지 스스로를 낮춰 부처님뿐 아니라 다른 모든 존재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다. 그간의 잘못과 이기심, 탐욕, 교만, 집착, 어리석음 등도 함께 내려놓는다. 티베트인들은 라싸의 조캉사원까지 수천㎞를 오체투지로 간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고행도 마다하지 않는 경건함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삶 자체를 수행으로 여긴다.

■오체투지는 가장 절박한 이들의 소리 없는 외침이 되기도 한다. 새만금 갯벌을 지키기 위해 종교계가 벌인 삼보일배와 오체투지가 대표적이다. 지금도 일터에서 쫓겨난 이들이나 너무 지친 장애인 부모들이 오체투지로 사회적 관심을 호소한다.

■누구에게나 간절한 마음이 있다. 건강, 평안, 행복, 합격, 성공, 부귀 등을 위해 어떤 이는 절을 하고, 다른 이는 기도를 올린다. 무엇이든 그 시작이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나부터 내려놔야 다른 것이, 우리가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안84가 울컥한 이유다. 인생이란 오체투지 순례길 여행에서 잊어선 안 되는 가치다.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

<박일근 / 한국일보 수석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