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들어 6번째 통화에서도 ‘근본원인 제거’ 되풀이
▶ 접점없는 역제안…서방균열 속 시간끌며 실익 챙기기
우크라이나 전쟁의 신속한 종전을 주장해 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들어 6번째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도출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현 상황을 초래한 '근본 원인'을 제거한다는 전쟁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은 3일(현지시간) 두 정상이 진행한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문제가 논의됐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속한 교전 중단을 거론했고 "우리 대통령은 러시아가 설정한 목표들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그건 현 상황과 대립에 이르게 한 근본 원인들을 제거하는 것이고, 러시아는 이런 목표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샤코프가 언급한 '근본 원인들'은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해 러시아 공격의 교두보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크렘궁의 선전에 주로 등장하는 표현이다.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을 명령, 전쟁의 불길을 댕긴 푸틴 대통령은 미국 주도의 서방군사동맹인 나토가 구소련 국가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선 2014년 반정부 시위로 친러 정권이 붕괴하고 들어선 친서방 성향의 새 정부가 나토와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고 나섰고, 푸틴 대통령은 이를 빌미로 삼아 침공을 개시했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우려한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외면하는 상황에서도 러시아군은 보급선조차 확보하지 않고 무작정 진격하다가 큰 손실을 입고 패퇴했고, 전쟁은 끝을 알 수 없는 소모전으로 치달았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개전 후 현재까지 발생한 러시아군 사상자가 100만명이 넘고 미·소 냉전기에 생산해 대량으로 비축해 놓았던 전차와 장갑차 등 무기도 상당 부분이 소진됐다고 평가한다.
그런데도 푸틴 대통령이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올해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의 결속이 붕괴할 위기를 맞은 상황이 첫 번째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불리는 그의 지지자들은 유럽 동맹국들이 미국에만 기댄 채 '안보 무임승차'를 한다고 비난해 왔다.
우크라이나 문제도 미국보다는 유럽의 안보와 직결돼 있는데 정작 앞장서야 할 유럽 동맹국들이 미국을 앞세운 채 뒤로 물러서 있다는 게 이들의 인식이다.
그런 상황에서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2월말 백악관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준 뒤 무기지원과 정보공유를 한때 중단했다.
이어 6월에는 미군의 무기 재고가 너무 줄었다면서 재차 전임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서 약속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그동안 너무 많은 무기를 줬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부터 우크라이나와의 평화협상에 나선 러시아가 과도한 요구를 들이대며 노골적으로 시간끌기를 하는 상황과 관련해서도 구두경고만 반복할 뿐 추가제재 등 실질적 압박에 나서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을 좀 더 지속함으로써 미국과 유럽 동맹국 간의 균열이 더욱 커지게 하는 것이 장기적 글로벌 전략 차원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할 소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병력과 무기 부족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와 달리 러시아는 자원입대시 주어지는 거액의 목돈을 받으려 전쟁터로 향하는 낙후지역 주민이 많아 병력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점도 푸틴 대통령이 급할 게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 보수성향 유력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날 사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최근의 무기 (중단) 결정은 푸틴에게 보내는, 전쟁을 지속하라는 또다른 신호로 보인다"면서 "트럼프가 그 독재자에게 휴전을 간청하는 동안 그는 계속 영토확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