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퍼플하트 훈장’ 받았는데… 50년 산 미국서 ‘추방’

2025-06-25 (수) 12:00:00 한형석 기자
크게 작게

▶ 한인 1.5세 박세준씨 ‘비극’
▶ 미 ‘파나마 침공’때 총상

▶ ‘PTSD’ 시달리다 마약 전과
▶ 이민정책 강화로 추방대상
▶ 결국 한국으로 ‘자진 출국’

그의 나이 55세. 7세 때 가족과 함께 이민을 와 LA에서 성장, 50년 가까이 미국에 살며 참전 군인으로 전공을 세워 퍼플하트 훈장까지 받았다. 그러나 복무 중 출동한 작전에서 총상을 입고 제대한 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다 생긴 ‘마약 전과’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이후 거세진 반 이민 정책의 광풍에 희생돼 50여 년 전 어릴적 떠나온 한국으로 결국 추방되고 말았다. 하와이 거주 참전 군인인 한인 박세준(55)씨의 이야기다.

공영방송 NPR 등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23일 자진 출국 형식으로 한국으로 추방됐다. 그는 파나마 침공 작전에 참전하고 ‘퍼플하트’ 훈장을 받은 미 육군 전상자이지만,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채 전과로 인해 추방 대상자가 됐고 결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강화된 추방 집행 정책의 희생양이 됐다.

박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부모 이혼 5년 뒤인 7세에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이민와서 어머니와 재회했다. 1년뒤 모자는 LA로 이사했다. 그는 합법적인 영주권자 신분이었지만 귀화는 하지 않았다. 한국군 장교였던 외삼촌을 존경했던 그는 셔먼옥스의 노터데임 고교 졸업 직후인 1989년 미 육군에 입대했다.


그는 파나마의 노리에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이른바 ‘파나마 침공’ 작전에 투입된 후 어느날 적군의 급습으로 AK-47 소총 탄환 두 발을 등에 맞고 쓰러졌다. 다행히 군번줄이 총알의 궤도를 살짝 비틀어 척수를 지켰고, 베트남전 참전 경험이 있는 민간인의 도움으로 병원까지 이송되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는 명예 제대했고, 퍼플하트 훈장을 받으며 복무를 마쳤다.

그러나 그의 법적 신분은 여전히 시민권자가 아닌 영주권자였다. 그는 그동안 미국에 살면서 귀화의 중요성을 잘 몰랐고, 군 내에서도 시민권 신청을 돕는 시스템이나 정보가 부족했다고 밝혔다. 박씨의 변호사인 다니콜 라모스는 “당시 많은 이민자 출신 군인들이 시민권 신청 방법 자체를 몰랐고, 군 지휘부나 법무 담당 부서에서 지원도 받지 못했다”며 “그 결과 많은 이들이 복무는 했지만, 귀화하지 못하고 남겨졌다”고 설명했다.

또 미군을 통한 시민권 취득의 경우 평시 복무자는 1년 이상 복무해야 자동 귀화 자격을 얻고 전시에는 하루만 복무해도 해당되지만, 박씨는 복무 기간이 1년 미만이었고, 파나마 침공은 미국 정부가 지정한 공식 ‘전시’에 포함되지 않아 ‘전시 복무자’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역 후 박씨는 큰 소리나 전쟁 영화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악몽에 시달리며 수면 장애도 심했다. 당시에는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던 개념인 PTSD에 시달렸던 것이다. 결국 그는 마약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1992년 LA 폭동과 1994년 노스리지 지진으로 가족이 피해를 입은 후 그는 하와이로 이사했다. 2000년에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고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일하며 직업적 성공도 맛봤다. 그러나 마약 중독은 점점 심해졌고, 코카인까지 손대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무너졌다.

뉴욕에서 마약 거래 중 경찰에 체포됐고, 법정 출석 명령을 어기며 보석 불이행이라는 가중 전과가 추가됐다. 이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 치명적인 기록이 됐다. 박씨는 2009년부터 2년 반을 퀸스 카운티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출소 후 하와이로 돌아온 그는 자동차 딜러에서 다시 일하기 시작했고, 두 자녀와 관계 회복에도 노력하며 삶을 재건하기 위해 힘썼다.

“막무가내 추방정책 멈춰야”


그러던 2012년 이민 당국은 박씨에게 추방 명령을 내리되 ‘추방 유예’ 형태로 그를 풀어줬다. 범죄 이력이 추가되지 않고 매년 정기적으로 출석하면 체류를 허용하는 방식이었다.

박씨는 이 조건을 성실히 지켰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는 그의 운명에 치명적이 됐다. 초강경 이민 정책 속에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은 과거 유예 조치를 받았던 이들까지 다시 추방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고, 박씨도 결국 그 대상이 됐다. 이달 초 정기 출석에서 ICE 관계자들은 박씨에게 이제는 상황이 변해 수주 내로 자진 출국하지 않으면 강제 추방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항공권을 예약했고, 85세 노모를 포함한 가족 및 친지들과 미국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뒤 지난 23일 오전 가족들과 공항에서 눈물로 작별 인사를 나눴다.

뉴욕 주법에서는 그의 마약 전과가 더 이상 추방 사유가 아니지만 보석 불이행 가중 전과는 여전히 추방 대상이다.

라모스 변호사는 퀸스 카운티 검찰과 협력해 이 전과를 경범죄로 낮추고 추방 명령을 취소시키기 위한 절차를 준비 중이지만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평가됐다.

박씨는 “인생에서 많은 것을 겪었다. 이것도 그냥 새로운 챕터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난 잘 지낼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기조에 대해 “단지 불법체류자 만이 아니라 영주권을 가진 이들, 사소한 전과 있는 이들까지 다 추방하려고 한다. 이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멈춰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형석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