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외교 원한다더니… “트럼프 핵협상이 중동전쟁 길 텄다”

2025-06-13 (금) 08: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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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이란 폭격에 뒤통수·빌미 제공 등 비판 제기

▶ ‘휴가계획 거짓말’ 네타냐후와 연막술 공조했나 뒷말도

외교 원한다더니… “트럼프 핵협상이 중동전쟁 길 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

이스라엘이 13일(현지시간) 새벽 이란 핵시설 수십 곳을 타격하면서 미국의 핵 협상이 사실상 기습공격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 외교적 해법을 원한다는 신호를 계속 발신하면서 15일 열릴 6차 핵 협상 전까지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이란을 방심케 했고 그 틈을 타 이스라엘이 허를 찌르는 기습을 단행할 길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이 6차 핵 협상 결과를 보고 움직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회담 이틀 전 전격적으로 행동에 돌입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할 수 있다는 전망은 몇 달 전부터 제기돼왔다.

미국이 지난 4월 이란과 핵 협상에 들어간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여러 차례 핵시설을 때리고 싶다는 의사를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압박하면서도 이스라엘의 공격을 만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보내왔다.

이스라엘이 공격 준비를 마쳤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협상 결렬 우려에 중동지역 대사관 인력들을 철수하면서도 미국은 6차 협상은 취소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지어 이스라엘이 이란을 타격하기 직전까지도 트루스소셜에 "이란 핵 문제에 대해 '외교적 해결'(Diplomatic Resolution)에 전념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스라엘의 공격 가능성에 대한 언론 질문에는 이란과 합의에 상당히 근접해있다면서 이스라엘의 공격을 원치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신호들 때문에 중동지역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6차 핵 협상은 그대로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국제사회도 이스라엘이 행동에 나선다면 그 시점은 6차 협상에서 유의미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이후일 것이라고 봐왔다.

더욱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아무런 일이 없는 듯이 태연하게 휴가 계획을 밝히면서 이런 관측은 더 힘을 얻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회담 이틀 전 전격적으로 공습을 단행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휴가 계획도 연막작전이었던 셈이다.

중동문제 전문가 데니스 로스는 "(중동특사)위트코프의 임무가 이번 기습 공격에 기여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이란은 협상이 진행 중이고 회담이 곧 열리려는 시점에는 이스라엘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공습 직후 즉각 자신들은 관여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독자적인 행동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여러 정황상 이번 작전이 트럼프 대통령의 묵인하에 이뤄졌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습 직후 폭스뉴스에 이스라엘의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밝혔고, 이란의 비타협적 태도 때문에 공격이 일어났다고 책임을 돌렸다.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에게 핵 협상 시작 전 60일간의 합의 시한을 제시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오늘이(13일) 61일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공격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제시했던 시한이 지난 직후 이뤄진 셈이다.

중동 전문가 아론 데이비드 밀러는 백악관이 이스라엘의 공습에 심각하게 반대했다는 징후는 없다며 이스라엘이 그럴듯한 거부를 가장한 승인을 받은 셈이라고 분석했다.

WSJ은 이스라엘로서도 핵시설은 물론 이란의 군 지도부에도 타격을 주려면 기습 작전이 필요했고, 6차 회담 전이 가장 이상적인 시점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WSJ은 그러면서 가장 큰 문제는 이번 공습으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핵 시설이 일부 타격은 입었을 수는 있지만 워낙 지하에 분산돼있는 만큼 피해가 크지 않을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이후 이란이 은밀하게 핵 개발에 나서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WSJ은 또 이란이 미군 기지 등에 보복 공격에 나선다면 중동 지역에 전면전이 발생하고 미국도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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