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터뷰] “36년 동안 친했던 라 스칼라와 결혼”

2025-05-23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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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훈 ‘라 스칼라’ 음악감독

▶ 247년 역사 최고 권위 오페라 종가
▶ “내년 첫 개막작품 베르디 올릴 것”

[인터뷰] “36년 동안 친했던 라 스칼라와 결혼”

정명훈 예술감독이 한국시간 19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열린 라 스칼라 극장 음악감독 선임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

“아시아 사람으로서 처음이라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나라를 빛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고, 꼭 해야 한다고 느끼죠.”

‘이탈리아 오페라의 종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이 클래식부산 예술감독인 지휘자 정명훈(72)의 음악감독 선임을 공개했을 때(본보 13일자 A2면 보도) 전 세계가 ‘아시아인 최초’라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하지만 그 점이 정작 정 감독에게 큰 의미는 아니었다. 정 감독은 36세 때인 1989년 프랑스 바스티유 극장 음악감독에 임명됐다. 첫 아시아인 유럽 주요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이었다.

7세 때 서울시향과의 피아노 협연으로 음악 무대에 데뷔한 정 감독은 1979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1914~2005)가 이끌던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지휘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이탈리아 로마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도쿄 필하모닉, 서울시향 등을 이끌어 온 그의 화려한 경력만 놓고 보면 라 스칼라의 선택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정 감독은 한국시간 19일 부산콘서트홀에서 라 스칼라 극장 음악감독 지명 후 처음으로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36년간 인연을 맺어 온 극장과의 유대감을 강조했다.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72)에 이어 극장을 2027년부터 2030년까지 이끌게 된 정 감독은 1989년부터 이 극장에서 84회의 오페라와 141회의 콘서트를 함께했다. 2023년엔 이 극장 소속 오케스트라인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역사상 첫 명예 지휘자에 위촉됐다.

정 감독은 “라 스칼라는 36년간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라고 했는데 이제 친구가 아닌 가족이 돼 버려 책임이 커졌다”며 “36년간 서로 사랑스럽게 지내다 결혼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바스티유 극장을 맡을 때만 해도 에너지가 많아 하루 24시간도 일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져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초대를 받아도 너무 늦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라 스칼라 한 곳만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라 스칼라 극장은 1778년 개관해 247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오페라 극장이다. 베르디의 ‘나부코’, 푸치니의 ‘나비부인’과 ‘투란도트’ 등 현재까지 널리 사랑받는 오페라 걸작이 초연됐고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 리카르도 무티, 다니엘 바렌보임 등 세계적 지휘자들이 음악감독을 지냈다. 음악감독은 극장의 공연 레퍼토리 선정부터 단원 선발까지 음악적 전권을 행사한다.

정 감독은 자신의 인선 배경에 대해 “이탈리아 사람이 음악감독을 맡기를 원하는 정치가가 많았지만 오케스트라와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를 많이 원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올 2월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65)의 총감독 취임도 영향을 미쳤다. 정 감독은 오르톰비나가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2007년부터 2024년까지 예술감독과 총감독을 맡았던 당시 많은 공연을 지휘했다.

취임 후 일정이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내년 12월7일 시즌 개막 첫 작품은 베르디의 ‘오텔로’를 염두에 두고 있다. 정 감독은 “라 페니체에서 17년간 오르톰비나와 특별한 베르디를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그간의 라 스칼라와의 작업 중 의미 있는 공연을 묻는 질문에도 베르디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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