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르헨티나, 2천710억 달러 규모 ‘침대 밑 달러’ 유통책 발표

2025-05-22 (목) 04: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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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위기·페소화 가치 하락에 저축 대신 ‘암달러’ 보관이 대세

▶ 밀레이 정부 “달러, 마음대로 써라”…이웃 브라질은 세수 확대 안간힘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정부가 낮은 외화 보유고 문제를 해결하고 내수 경제를 진작하는 카드로 '침대 밑 달러' 유통 장려책을 꺼내 들었다.

마누엘 아도르니 아르헨티나 대통령실 대변인은 22일(현지시간) 정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여러분의 달러는 여러분 결정에 따라 쓸 수 있어야 한다"면서, 보유 중인 달러에 대한 출처 증명 신고 의무를 사실상 면제하는 안과 개인 자산 면세 폭을 확대하는 안을 발표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개인과 법인에서 자금을 보유하게 된 경위를 반드시 증빙하도록 한 송금과 현금 인출 한도를 높이는 한편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되는 정기 예금 최고 액수와 가상 지갑으로의 이체 한도 역시 늘렸다.


이는 '잠자는' 달러 뭉치를 일상적인 거래에 쓸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현지 일간 라나시온은 전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침대 밑 달러'(원래 표현상 직역하면 '매트리스 밑 달러')라고 부르는 자산은 은행 같은 금융회사에 맡기지 않고 개인적으로 보관하는 현금을 의미한다.

이 현상은 아르헨티나에선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도한 정부부채를 제대로 갚지 못해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에 들어가거나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상황을 적지 않게 경험한 아르헨티나 주민들은 금융당국에 자기 재산을 노출하지 않은 채 자국 화폐보다 안전한 달러를 모아 숨겨두는 경향이 생겨났다.

달러는 특히 정부의 외환 규제를 피하고자 불법 외환시장을 통해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침대 밑'이라는 문자 그대로 뭉칫돈을 집안에 둔다기보다는 가상 계좌 또는 조세 회피처로 돌려놓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르헨티나 국민의 미신고 달러 보유 규모는 2천710억 달러(374조원 상당)로 추정된다고 로이터통신은 아르헨티나 통계청을 인용해 보도했다.

루이스 카푸토 경제부 장관은 구체적인 '달러 양성화 총액'을 추산하진 않은 채 "이는 마약 밀매업자들이 불법 자산을 은닉하는 상황이 아니라 수년간 잘못된 시스템에 의해 착취당한 아르헨티나 국민 다수의 문제였다"면서 "유권자들은 올 하반기 총선에서 이 조처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투표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조처는 '중앙은행 폐쇄, 달러를 공식 화폐로 채택'이라는 대선 공약을 냈다가 국정 운영 과정에서 다소 뒤로 물러난 밀레이 대통령의 점진적 통화 시스템 전환 움직임으로 볼 여지도 있다.

페소화 공급량을 늘리지 않는 동시에 국민이 달러와 페소를 병행 사용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는 뜻이다.

AP통신은 이를 밀레이 대통령의 '내생적 달러화' 계획이라고 짚으면서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새로운 달러 유입을 통해 시중에서 달러 사용 빈도를 늘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기 침체 우려 속에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까지 겹쳐 타격을 입게 된 '세계 1위 닭고기 수출국' 브라질은 새로운 세수 원천을 찾고 정부 지출을 통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정부는 이날 달러 구매와 송금을 포함한 금융 거래에 대한 세금 인상안을 내놨는데, 현지에서는 이를 '자금 흐름에 관세를 매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브라질 언론 G1은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룰라 정부가 사회 지출 압력이 증가함에 따라 재정 목표 달성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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