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미쳤다는 걸 알기 전에 이 차를 샀습니다’라는 스티커를 범퍼에 붙이고 다니는 차가 있다. 다르게 말하면 ‘이 차에는 불을 지르지 마세요’라는 말이다. 테슬라 연쇄 방화 사건이 있은 뒤였다. 방화 용의자를 잡고 보니 하필 30대 한인이었다.
공무원은 30% 줄여도 된다고 믿는 60대 한인이 있다. 그의 공직 경험에 미뤄 그렇다는 것이다. 딸 앞에서 이 말을 하자 딸의 눈빛이 달라졌다. 딸은 정부 한 부처의 인사담당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요즘 같은 때 이런 이야기를 딸이 있는 데서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DC의 정부 출연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전 직장동료와 갑자기 연락이 안된다. 알고 보니 그 기관의 직원이 모두 일시해고(furlough) 됐다. 전화기도 반납해야 했다. 무차별 해고가 먼 이웃의 일이 아님을 실감한 순간이다.
세계 1등 부자 일론 머스크가 공적 1호가 됐다. 그가 수장인 정부효율부(DOGE)가 휘두르고 있는 해고의 칼 때문이다. 이른바 레거시 언론에는 부정적인 보도 일색이다. 뒤에는 ‘보스 트럼프’가 있고, DOGE 일도 혼자 하는 게 아니지만 그 개인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끔찍할 정도다. 머스크의 행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것은 3년 전 트위트(지금의 X) 인수 당시의 이야기. 8,000명이 채 안 되던 트위트 직원은 머스크가 인수한 지 두 달 뒤 2,000여명으로 줄었다. 단지 비용 때문이 아니라 조직에 긴박감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는 말이 뒤따랐다. ‘화성 식민지 개척’을 목표로 설립된 우주항공 기업 ‘스페이스 X’ 이야기를 들으면 머스크의 진면목이 더 잘 드러난다. 이 회사가 만든 펠컨 1호는 궤도에 진입한 최초의 민간제작 로켓이라는 기록을 갖는다. 머스크는 이 일을 500여명의 직원과 해냈다. 보잉의 비슷한 사업부 인원은 5만명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우주 항공산업에 대한 머스크의 인식이다. ‘미국 우주 산업은 NASA, 국방부 같은 관료조직과 보잉, 록히드 마틴 같은 대기업들이 합작해 말아먹었다’는 것이 머스크의 생각이다. 폐쇄된 네트워크 안에서 이뤄진 극단적인 비효율 때문에 혁신이 가로막혔다는 것이다.
로켓 부품의 70%를 자체 제작한다는 스페이스X의 원가절감 방법은 이런 식이다.
“엔진 노즐 회전 작동기에 12만달러? 차고 문 개폐기 보다 뭐가 복잡하죠? 5,000달러에 만드세요.” 한 엔지니어가 세차 시스템 밸브를 이용해 이 요구에 부응했다. “왜 로켓을 들어 올리는 크레인을 만드는데 200만달러나 들죠? 공군의 안전 규정 때문에 그렇다고요?” 관계자가 군을 설득해 규정을 바꿨다. 크레인은 30만달러에 만들었다. “우주 정거장 안에 쓰는 걸쇠가 1,500달러라고요?” 화장실 칸막이에 쓰는 걸쇠를 우주 정거장용 잠금 장치로 개조했다. 30달러가 들었다.
규정과 관행에 순응해서는 혁신할 수 없다.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고 생각되면 그는 꼭 “왜?”라고 묻는다. 강압적으로 뜯어 고친다. 이런 그가 DOGE를 이끌고 있다. 머스크는 정치인이 아니다. 정무 감각? 그런 건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된다. 그는 표가 필요 없는 사람이다. 기업의 잣대로 정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줄줄 새는 눈먼 돈, 무사안일, 비효율, 때로 명백한 사기도 눈에 띈다. 두고 볼 수 없다.
스티브 황보 전 라팔마 시장에게 전화했다. 그는 임기 중에 시의원 직을 던졌던 사람이다. 강고한 관료조직의 밥그릇 챙기기 앞에 한계를 느꼈다. 그는 “DOGE의 일은 국가와 후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매년 2조 달러의 적자, 미국의 누적 적자가 37조 달러임을 상기시킨다. SBA론 만해도 9개월이 안되거나 115세가 넘는 사람에게 나가고, 11살 미만이 받은 융자액만 3억달러라고 한다. 이런 엉터리 없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뜯어고칠 수 있는 시간은 1년. 내년 11월에 중간선거가 있다. 휘몰아칠 수밖에 없다. 누구도 하지 못한 혁명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종열 교수(전 뉴욕 페이스대학)에게도 생각을 물었다. “(머스크)방식을 찬성하지는 않으나 저렇게 한 번 흔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효율성 문제는 이미 40~50년 전부터 제기된 이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은 정치인은 꿈도 꿀 수 없는 일, 욕 먹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인다. 다만 국가부채는 미국의 경제규모에 비하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알고 있는 정보, 이해 관계, 정치 성향 등에 따라 머스크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판단은 역사의 몫이다. 이 와중에 눈 먼 칼에 맞아 애먼 사람이 치명상을 입는 일도 물론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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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