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평선] 삼십육계로 본 ‘중국 위협론’

2025-03-11 (화) 12:00:00 최문순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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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회 연설을 방해한 민주당 앨 그린 하원의원이 경위들에게 이끌려 쫓겨났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휘두르며 트럼프 대통령의 메디케이드(저소득층 대상 공공 의료보험) 재정 삭감 계획에 항의했고,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두 차례 경고 끝에 퇴장 명령을 내렸다. 77세의 동료 의원이 굴욕을 당하는데도 민주당 의원들은 보고만 있었다.

■ 겁쟁이여서, 아니면 의리가 없어서였을까. 아니다. 그린 의원은 집권 1기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줄기차게 요구한 것을 비롯해 시끄럽게 싸우기로 유명하다. 민주당은 그에게 동조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이롭지 않다고 봤다. 억지와 궤변은 호소력 있는 논리로 제압해야지, 큰 목소리로 틀어막는 건 하수라는 것.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거짓말”이라고 쓴 피켓을 흔들고 야유를 보내는 수준에서 ‘선’을 지킨 건 이 때문이다. 트럼프의 숙적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은 입 모양으로 “오 마이 갓”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분노를 달랬다.

■ 의회 민주주의가 튼튼한 나라에선 ‘발언으로 타인을 해치지 않을 의무’와 함께 ‘헛소리도 경청할 의무’도 강조한다. 그래서 의회 질서유지 규칙이 엄격하다. 그린 의원을 퇴장시킨 건 질서유지 전담 경위들이었다. 프랑스 의회에선 소란을 피운 의원의 회의장 출입을 최대 한 달까지 금지하고 이 기간엔 월급을 삭감한다. 독일과 스위스 의회엔 의장이 의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규정이 있고, 덴마크 의회는 질서를 해친 의원의 발언권을 회기 내내 박탈할 수 있다.

■ 한국 국회에서 의원이 소리 좀 질렀다고 경위에게 끌려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회가 마비될 것이다. 요즘 국회엔 품격이라곤 없다. 의원 면전에 대고 “치매냐”고 조롱하는가 하면, “조용히 해” “입 다물어” 같은 말로 서로의 입을 막는다. 본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될 때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방청하러 온 학생들에게 부끄럽다”고 경고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해 시정연설 보이콧은 협량의 소치였으나 국회 문화가 추락한 책임도 없지 않다.

<최문순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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