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외면받던 치료법이 희망된 까닭…췌장암 4기 환자 종양 사라졌다

2026-03-26 (목) 12:00:00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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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던 치료법이 희망된 까닭…췌장암 4기 환자 종양 사라졌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김형선 간담췌외과 교수가 하이펙을 이용한 췌장암 치료법을 설명하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74세 A씨는 2년 전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췌장 꼬리 부분에 4㎝ 크기의 암이 발견됐고, 암세포는 이미 비장 주변 혈관과 복강(복부 내부 공간)을 둘러싼 복막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수술이 어려워 사실상 항암치료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12번의 항암치료를 견디는 동안 암세포는 더 이상 증식하지 않았다. 복막 전이 정도를 평가하는 지표(PCI 점수)가 수술이 가능할 정도로 낮게 유지됐고, 그해 12월 종양감축술과 복강 내 온열항암화학요법(HIPEC·하이펙)을 결합한 수술을 받았다. 개복 수술로 눈에 보이는 암 덩어리를 모두 떼어낸 후, 40~42도로 데운 항암제를 복강에 90분 동안 투여해 남아있을지 모를 미세 암세포를 씻어냈다.

수술을 주도한 김형선 강남세브란스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는“1년여가 지난 지금 A씨 몸에서 더 이상 암세포가 관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번의 항암치료를 버틴 후 지난해 5월 같은 수술을 진행한 68세 B씨 역시 암세포가 사라진 일상을 누리고 있다. 17일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김 교수는“췌장암 치료엔 하이펙이 효과가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강력한 선행 항암치료를 병행하는 새로운 전략을 쓰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복막 전이는 어떤 상태입니까.

“흔히 췌장암이라고 부르는 암의 대부분(약 90%)은 췌관세포에서 발생하는 췌장관선암입니다. 췌장관선암은 전이가 유독 빠르고 치료가 매우 까다로워 예후가 가장 나쁜 암으로 악명이 높죠. 게다가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환자의 70~80%는 이미 수술이 불가한 상태로 병원을 찾습니다. 췌장에 있는 암세포는 혈관과 인접해 있어 간이나 복막으로 옮겨가기 쉬운데, 복막 전이는 암세포가 씨를 뿌리듯 복막에 흩뿌려진 4기 상태를 말해요. 기존에는 수술 자체가 불가능해 항암치료를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췌장암 특유의 빽빽한 섬유구조 탓에 항암제마저 잘 투과되지 않아 치료에 한계가 컸고요.”

-하이펙은 어떤 치료법입니까.

“대장암이나 난소암에 주로 쓰는 방법입니다. 먼저 눈에 보이는 큰 암 덩어리들을 최대한 잘라내는 종양감축술을 합니다. 그런 뒤 눈에 보이지 않는 잔존 미세 암세포를 사멸시키기 위해 복강 내에 물을 채우고 온도를 높인 다음 항암제를 주입해요. 암세포가 열에 취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40도 이상의 열로 항암제의 침투력을 높여 복막에 숨어 있는 미세 암세포까지 직접 타격하는 방법입니다.”

-췌장암은 하이펙 효과가 높지 않다는 시각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전 연구들과 가장 큰 차이는 선행 항암치료 유무예요. 과거에는 수술 전에 항암치료를 하지 않거나 짧게만 하고 바로 개복해서 수술과 하이펙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항암제들은 지금처럼 효과가 뛰어나지 않았고요. 원격 전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술하니까 재발이 잦고, 생존율에 기여하지 못했던 거예요. 하지만 최신 항암제로 수개월간 종양을 억제하고 안정화한 다음에 종양을 제거하고 하이펙을 진행하니까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요.”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메이오클리닉에서도 하이펙을 이용한 췌장암 치료법을 연구해요. 수술 전 하이펙을 하고, 종양감축술 후 하이펙을 한 번 더 하는 방식인데, 제 방법과 유사합니다. 일본에선 복강 안에 항암제를 직접 주입하는 임상 연구가 진행 중이에요. 복부에 작은 관을 삽입한 다음 항암제를 투여하는 방식인데, 형태는 다르지만 항암제를 복강 내에 직접 전달해 효과를 높이려는 점에선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췌장암 4기 모든 환자에게 적용 가능합니까.

“가장 중요한 건 환자의 상태예요. 췌장암 복막 전이 환자 중에서도 항암치료에 반응이 좋아 암세포가 더 퍼지지 않고, 간이나 폐 같은 다른 장기로 전이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복막 전이의 범위가 제한적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항암제 치료와 수술을 버틸 수 있을 만큼 환자의 건강 상태가 양호해야 해요. 앞으로도 항암치료 반응이 좋은 환자를 대상으로 환자·보호자 동의를 거쳐 진행할 계획입니다. 좀 더 효과적인 약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은 대장암에 주로 쓰는 마이토마이신으로 하이펙 치료를 합니다.”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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