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요 칼럼] 손수건

2025-01-21 (화) 12:00:00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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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비바람 내리치는 겨울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지를 사러 근처 타겟(target)에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십 대 로 보이는 어머니가 악을 쓰며 우는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이 얼굴은 눈물, 콧물이 범벅 된 검은 얼굴이 반질반질하고 말할 수 없이 지저분했다. 어린 모녀는 출입구에서 손님들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밀려오는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아이는 쇳소리 부딪치는 기침을 하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아이와 청각 장애인 엄마를 데리고 바람을 피할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남편이 뒤따라 들어왔다. 남편은 아이를 보자마자 곧 바로 자기 손수건을 꺼내 식수대의 물에 적셔 아이 얼굴을 깨끗이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 더러워진 수건을 버릴 줄 알았는데 고이 접어서 다시 자기 재킷 호주머니에 넣질 않는가! 나는 기겁을 하며 빨리 꺼내 버리라고 눈짓을 했다. 남편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이 달래는 일에만 열중이 였다. 더러워졌으면 깨끗이 빨면 된다는 남편과 병균이 옮겨질 테니 버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우리는 서로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종이가 흔하지 않았던 내 어린시절에는 손수건이 필수 소지품이었지만 요즘은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평소 땀을 많이 흘리고 콧물이 많은 남편은 지금도 늘 손수건을 가지고 다닌다. 수십 개 되는 손수건만큼은 자신이 빨아서 다림질하여 반듯하게 접어 둔다. 등산을 자주 다니는데 모자 안에 넣어서 머리에 쓰면 이마에 흐르는 땀과 햇볕을 막아준다. 찬바람이 불면, 목에 멋지게 둘러 목을 따뜻하게 하는 스카프로 쓰인다. 가끔씩 발목이 삐었을 때는 붕대가 되기도 한다. 한번은 산 중턱에서 바람에 날아온 돌로 등산 팀 일행 중 한 명이 팔을 크게 다쳤다. 출혈이 심한 팔을 묵고 헬리콥터가 와서 병원으로 갈 때까지 남편의 손수건은 압박대로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남편의 지인들은 한국에 나가면 온갖 색상, 사이즈의 손수건을 선물로 사왔다. 그 많고 많은 수건 하나 버려도 되는데 굳이 그 병균이 득실거릴 더러워진 수건을 버리지 않은 이유를 나중에 말해 주었다. 그 수건을 더럽게 취급하여 어린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단다. 그렇게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 빈약한 나의 생각이 부끄러웠다.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할머니는 눈에 염증이 있어서 항상 안약연고와 하얀 가제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셨다. 한 두 개 정도 밖에 안 되는 그 수건을 소중히 여기시며 날마다 깨끗이 빨아 쓰셨다. 한번은 내가 넘어져서 코피를 흘리자 할머니는 주저치 않고 귀하게 여기는 손수건으로 내 코피를 막았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할머니 사랑의 손길을 잊을 수 없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어머니가 예쁜 꽃무늬 수놓아 가슴에 달아 주셨던 손수건 생각으로 가슴이 따뜻해진다.

날이 차다. 그래서일까. 남편의 손수건도,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수건도 그립다. 작은 면 조각이지만, 그 작은 손수건으로 행하는 온정과 사랑은 크기를 잴 수 없다.

내일은 예쁜 손수건을 사다가 남편 주머니에 몰래 넣어 놓아야겠다.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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