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 ‘해양굴기’에 칼빼든 트럼프⋯한 조선업 반사익 기대

2025-04-19 (토) 12:00:00 이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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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중 선박 입항료 부과 예고
▶ USTR “중 건조 선박 톤당 18달러”
▶ 180일 유예⋯10월부터 시행 예고

▶ 중은 “조치 즉각 중단” 강력 반발
▶ 트럼프, 자국 해운산업 육성 계획
▶한 업체 미 파트너로 참여 가능성

미국이 자국 항구에 들어오려는 중국산 선박에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중국산 선박 구매·운항 부담을 키워 글로벌 해운사들을 중국과 떼어놓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미중 간 관세 전쟁 국면에서 중국을 협상장으로 유인하기 위한 압박 카드로도 읽힌다. 중국은 즉각 반발하며 보복 조치를 예고했다.

다만, 미국 조선업 재건의 ‘파트너’로 지목돼 온 한국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17일(현지시간) ‘중국의 해양·물류·조선 분야 장악에 관한 USTR 301조 조치’를 발표하고 향후 중국 업체가 운행하거나 중국이 건조한 선박이 미국 항구에 정박할 때 입항 수수료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입항료는 180일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10월 1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입항 수수료는 최대 연 5회 부과되며 톤당 50달러를 내야 한다. 중국이 아닌 제3국이 운영하는 중국산 선박에는 톤당 18달러 또는 하역 컨테이너당 120달러의 수수료를 물리기로 했다. 수수료는 3년에 걸쳐 매년 인상될 예정이다.

USTR이 지난달 24일 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 기항한 선박의 평균 선적량은 6,623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한 개)다. 단순 계산으로는 중국 건조 선박 한 대가 미국에 모든 화물을 하역할 경우 79만4,760달러(약 11억3,000만 원)의 입항료를 부과받는 셈이다. 미중을 오가는 선박의 크기를 고려하면 실제 입항료는 그 이상일 수 있다.

중국산에 입항료를 부과하면 각 해운사는 중국산 선박 구매·운영이 꺼려질 수밖에 없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선박 건조량을 앞세운 중국의 ‘해양 굴기’ 속도를 지연시킬 사실상의 제재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게 미국의 전략이다.실제, USTR 보고서에는 선박 소유주가 미국 건조 선박을 구매한 경우 그에 맞춰 최대 3년간 수수료를 면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에 2028년부터는 미국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출하는 경우 일정 비율 이상 미국에서 건조된 배를 사용하도록 했다.

한국 조선 업계로서는 반사이익이 예상된다. 해외 선사들이 수수료를 피하기 위해서 또 다른 조선 강국인 한국에 손을 내밀 개연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다”며 미국 조선 산업 재건 파트너로 한국을 지목해 왔다.

입항료 부과 조치가 발표된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간 관세 전쟁과 관련, “중국과 대화하고 있다”며 수 주 안으로 협상 타결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차후 중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사용할 카드로 이번 조치를 내놨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당장 보고서에도 협상 여지가 담겨 있다. USTR은 수수료 부과 관련 청문회를 다음 달 19일 진행할 예정이다. 청문회 전까지 △비율의 인상 여부 △6~24개월 범위 내 유예 기간 조정 등 의견 수렴도 이뤄진다.

중국은 반발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정례브리핑에서 “전 세계 해운 비용을 증가시키는 등 공급망 안정을 해칠 뿐 아니라 미국 소비자와 기업의 이익을 해쳐 결국 미국 조선업을 활성화할 수 없을 것”이라며 “조치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합법적 권익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하겠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유통·물류업계를 중심으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 발표 직후 미국 의류·신발협회는 “항만 수수료는 운송비용을 상승시켜 미국 농부, 노동자와 경제에 해를 끼칠 것”이라며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BBC방송은 이번 발표가 “관세로 인해 세계 무역이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졌다”고 전했다. 물류 회사 플렉스포트의 산느 맨더스 대표는 BBC에 “최근 3개월간 관세가 항구를 막아왔다”며 “더 많은 화물이 유럽으로 향할 경우 혼잡이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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