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크리스마스 휴전’의 아름다운 풍경

2025-01-07 (화) 08:01:56 허종욱 전 한동대 교수 사회학박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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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불문율'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성문율처럼 문서형식을 갖추지 않고 준수의 강제성이 없지만 전쟁의 상대국들이 특별한 시기에 전투행위를 중단하는 규율을 말한다. 기독교 문화권 서양에서는 성탄절에, 중화문화권 동양에서는 설날에 상대국들이 총칼을 멈추고 잠시 휴전을 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러나 세계전쟁사를 보면 이 ‘전쟁의 불문율'이 꼭 지켜져 오지는 않았다.

“역사적인 만남: 영국과 독일병사들이 같이 사진을 찍다” 1915년 1월 8일자 영국 일간지 데일리 미러(Daily Mirror)가 머리 기사로 사진과 함께 실은 제목이다. 1914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세계1차대전 중 벨기에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던 영국 소총수여단 장병들과 독일 작센왕국군 육군 2군단 연대 장병들 20여명이 무기를 벌여두고 참호에서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오후 7시 30분경 독일군들이 촛불을 켜고 크리스마스 케롤을 부르기 시작했다. 얼마후 독일군 한명이 영국군 참호로 와서 독일산 포도주 한병을 전했다. 영국군은 크리마스 케이크와 담배를 건냈다. 각기 참호에서 나온 양국 군인들은 크리스마스 케롤을 함께 부르며 축구경기를 했다. 역사는 이를 두고 ‘성탄절 휴전'(Christmas Truce)라고 부른다. 두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이 보여준 ‘전쟁의 불문율'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인류의 평화와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올해 성탄절에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이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발전소와 수도시설을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하여 전기와 수도가 끊겨 크리스마스 계절 추운 겨울에 고통을 당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한 기독교 문화권 국가(러시아 동방교회)인 러시아가 믿음의 형제국인 다른 기독교 문화권 국가(우크라이나 동방교회)인 우크라이나를 성탄절에 공격하는 만행을 보면서 ‘성탄절 휴전'의 미덕이 아쉬웠다.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은 러시아의 이런 만행을 두고 일부러 크리스마스를 택하여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공통을 안겨주었다고 비난했다.

나는 1968년 9월 이른바 ‘구정공세' 후 신문사 특파원으로 베트남전쟁에서의 한국군의 상황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당시 베트남에 주둔하고 있던 백마, 맹호, 청룡부대는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한국군은 베트공 공세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여 철저한 방어태세를 취했던 것이다. ‘구정공세'는 1968년 1월 30일 구정부터 2월 말까지 호지밍이 이끄는 북베트남공산군과 남베트남에서 조직된 베트공(베트남인민해방전선)군이 합작하여 베트남 수도 사이공을 비롯해서 베트남전역의 군사령부와 민간통제를 기습 공격한 사건이다.

베트남에서 ‘테트'라고 부르는 구정 명절은 중화문화권에 속한 나라들에게는 기독교 문화권의 속한 서양국가들에서 크리스마스와 맞먹는 명절이다.
그런데 ‘구정공세'때는 북베트공이 러시아가 지난 크리스머스날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것 처럼 남베트남을 공격한 것이다.

새해가 밝았다. 이 땅에 영원한 ‘크리스마스 휴전'이 찾아오기를 간구하는 바다.

<허종욱 전 한동대 교수 사회학박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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