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압록강은 흐른다』와 이미륵의 생애

2026-03-09 (월) 08:08:17 유양희 워싱턴 문인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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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태어나서 3월에 세상을 떠난 이미륵(1899~1950)의 자전적 장편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최근에 다시 읽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당시의 한국문화를 독일인들에게 최초로 깊이 있게 알린 한국의 디아스포라 문학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이미륵은 경성의학전문학교 3학년 재학 중 3.1운동에 가담해서 독립선언문을 배포하고 조국의 독립을 세계에 알리다 일제의 수배령을 받게 된다. 이를 피해 압록강을 건너고 상해를 거쳐 1920년 독일에 정착하기까지의 내용을 회고 형식으로 쓴 글이다.

오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조국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아 1946년에 독일어로 쓴 이미륵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고향 산천, 가족과 동무들, 그리고 이웃 간에 오간 따뜻한 정, 식민지 현실과 독립의 열망이 담긴 내용이다. 작가의 순수한 심성이 잘 묘사된, 어른이 읽어야 할 동화 같은 소설이다.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장의 여운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


이미륵이 독일어로 발표한 이 소설은 독일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독일어로 썼다고 인정되어 독일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이 소설을 발표한 1946년에는 ‘독일어로 쓴 가장 훌륭한 책’으로 선정되었고, 독일의 전 지역신문 및 잡지에 100여 편의 서평이 실리는 등, 찬사의 글이 쏟아졌다. 한 독일 평론가는 “인종이나 민족의 차별이 없이 인생 그 자체의 최고 가치는 정직함과 선량함이라는 것을 이 작품이 표현하고 있다.”라고 했는가 하면 어떤 학자는 “가장 한국적인 상황에서 살아온 지극히 보통 한국인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이 작품이 세계 독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었던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소설은 영국에서 1954년에, 미국에서 1956년에 영역판으로 출판되었다. 한국에서는 1959년에 최초로 전혜린에 의해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애석하게도 그는 우리말로 발표한 작품이 없다.

이미륵은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본명은 이의경이다. 천석꾼 아버지 이동빈과 어머니 이성녀의 3대 독자로 1899년 3월 8일에 태어났다. 딸만 셋 낳은 어머니가 미륵불에게 기도해 얻은 아들이라 해서 미륵彌勒이라 불렀고, 이것이 필명이 되었다. 1914년부터 3년간 온 힘을 다해 강의록으로 독학해서 그는 1917년(18세) 경성의전에 22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서 상경한다.

1919년(20세) 3.1운동에 연루되어 일경의 체포망이 점점 좁혀오자, 고향 근처에 숨었던 그는 멀리 도망가라는 어머니의 채근에 압록강을 건넌다. 어머니는 그와 작별할 때 모자가 다시 못 만나더라도 슬퍼하지 말라고 결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1920년 그는 안봉근(안중근의 사촌 형)의 도움을 받아 독일로 망명해서 정착했다. 1928년(29세) 독일 뮌헨대학에서 동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전공과는 무관한 창작활동에 전념했다. 궁핍한 생활에 쫓기면서도 자신을 지탱하기 위한 정신적 출구인 글쓰기에 전부를 걸었다. 1946년(47세)에는 그래펠핑에서 ‘월요대담회’라는 문인협회를 설립했고 그해에 그의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Der Yalu fließt)』를 발표해서 일약 유명 작가가 되었다.

1948년부터 뮌헨대학 동양학부에서 한국학과 동양철학을 강의하면서 교육자로서의 새로운 생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의 조혼 관례에 따라 열한 살 때 결혼해서 1남 1녀를 두었으나 일찍이 사망했고, 아내의 생사도 모른 채 독일에서 독신으로 지냈다.

이미륵의 정신적 동지였고 뮌헨대학에서 반나치 비폭력 저항활동 학생단체의 지도교수를 맡았던 쿠르트 후버Kurt Huber(1893-1943) 교수는 그 학생단체가 백장미단 명의로 배포한 반정부 전단지 사건으로 주동자들이 단두대에서 처형된 직후인 1943년 7월13일 그도 처형된다. 미륵은 그와 순수철학, 시국 담론을 나누어온 막역한 사이였다. 그가 처형되자 유가족을 자신이 배급받은 식량까지 나눠가며 종전까지 그들을 지원하고 돌봐줬다.

그는 1950년(51세) 3월 20일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래펠핑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안타깝게도 망명 후, 죽을 때까지 그는 한국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2019년 제정된 뮌헨 남부 그래펠핑의 쿠르트 후버 거리에는 후버 교수 동판과 나란히 이미륵의 기념 동판도 새겨져 있다. 동판 아래에는 미륵이 생전에 자주 쓰던 “사랑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가시동산이 장미동산이 되리라."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4년 만인 2024년 11월 17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망자가 되어서야 조국의 품에 안긴 이 시여 부디 편히 영면하소서.

<유양희 워싱턴 문인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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