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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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奸臣) 이야기

2025-01-06 (월) 07:59:43 정성모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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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정육사(六正六邪)는 나라에 의(義)로운 여섯 종류의 신하 육정(六正)과 나라에 해(害)로운 여섯 종류의 신하 육사(六邪)를 말한다. 간신은 해로운 여섯 종류의 신하, 즉 `육사신(六邪臣)'의 하나로 `간사한 신하'를 말한다.

육사신을 유형별로 구분하면 구신(具臣), 유신(諛臣), 간신(奸臣), 참신(讒臣), 적신(賊臣), 망국신(亡國臣)이 있다.

아무런 구실도 못하고 단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신하는 구신/군주에게 아첨만하는 신하를 유신/간사한 신하,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공명정대함을 저버리는 신하를 간신/참소(讒訴)를 일삼는 신하, 즉 남을 짓밟고 올라가기 위해 남을 헐뜯어서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윗 사람에게 거짓으로 고하는 신하를 참신/개인적 이익만 추구하여 반역(反易)하거나 불충(不忠)한 신하, 하극상의 신하를 적신/나라를 망하게 하는 신하, 적을 이롭게 하는 신하, 최악의 신하를 망국신이라고 한다.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나 반역자들도 간신에 들어간다.


해가 되는 육사신은 나라는 물론 개인, 모임과 직장, 사회생활에서, 21세기 글로벌 세상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회자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간신의 특징에 부합하는 사람이 사회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사회 부적응으로 실패하거나 좌절할 일이 거의 없다. 주변으로부터 간신배 소리 듣는 사람들은 적어도 인간관계를 교묘히 조율하는 처세술과 자기 이득에 따라 남을 이용해 먹는 정치적 권모술수가 뛰어나다. 높으신 분들의 눈밖에 나지 않으면서도 정적들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기회 잡아서 도태시키는 스킬 하나는 천재적이다.

공자는 간신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 구분하였다. 통치자는 이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음을 반대로 먹고 있는 음험한 자/말에 사기성이 농후한데 달변인 자/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고집만 센 자/뜻은 어리석으면서 지식만 많은 자/비리를 저지르며 혜택만 누리는 자.

이들은 모두 말을 잘하고, 지식이 많으며, 총명하지만 진실성이 없다. 정치적 이득만 챙기고 ‘사람 세상'을 ‘동물의 왕국'으로 만드는 재주가 특출하다. 간신의 뒤에는 언제나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가 있다. 그래서 간신은 만들어진다고 한다. “무능한 병사는 없다. 무능한 장군이 있을 뿐이다.” 나폴레옹의 말이다.

이렇 듯 해로운 간신들은 역사 이래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의 삶속에서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고려 후기 권세가로 기철(奇轍)이 있었다. 여동생(기황후)이 원나라의 황후가 되면서 권세를 부렸다. 원의 세력이 약화되자 친척과 심복들을 요직에 앉혀 세력 기반을 구축하였으나, 결국 고려를 팔아먹는 매국노이자 희대의 간신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악명 높은 매국노 간신 이완용이 있다. 일본의 힘이 점점 강해지자 친일파로 변신했고, 1905년에는 이토 히로부미의 제안을 받아 을사조약을 맺을 수 있도록 고종을 협박해 나라의 외교권이 박탈되었다. 1910년에는 강제합방을 주도해 조선을 일본에게 넘겨주었다.

중국에는 한나라 말 영제(靈帝)시절 환관을 뜻하는 십상시(十常侍)가 있다. 어린 황제가 통치 능력이 없자, 십상시는 영제를 주색에 빠지게 하고, 영제는 그들의 농간에 놀아나 정치를 돌보지 않았다.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결국 몰락하고 만다. 오늘날 간신의 대명사로 자주 인용된다.


유럽에는 비선실세 요승(妖僧)인 그레고리 라스푸틴(Grigori Yefimovich Rasputin)이 있다. 시베리아의 농민 출신으로 간신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황실을 이용해서 국정을 농단하고 민심 이반을 야기하여 결국 러시아 제국을 멸망시킨 장본인이다.

공자의 말대로 곡학아세(曲學阿世)한 간신들을 제거하지 않아 결국 그들 때문에 탄핵되어 저물어 가는 한국 대통령의 뒷끝을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씁쓸하다.

“무능한 통치자는 만참(萬斬)으로도 모자란 역사의 죄인이다." 만참은 만 번 목을 벤다는 뜻이다. 임진왜란을 다룬 ‘7년 전쟁(1970 출간)’ 책에서 나오는 말이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알베르 까뮈(Albert Camus)가 2차대전 당시 나치에 부역한 프랑스인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강하게 어필한 말이다. 위정자와 간신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로 보인다.

작금의 불안한 한국 정치 사태가 세계 뉴스거리가 되곤 하지만,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태평성세(太平聖歲)가 도래할 출산의 진통이라고 생각한다.

<정성모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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