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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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버린 친구들

2025-01-06 (월) 07:57:23 조태자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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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다. 만물이 잠들어 있는 것 같은 이 겨울에 창밖의 저 벌거벗은 나무들을 보며 오는 세월,가는 세월 속에 나와 함께 정다운 시간들을 가졌던 옛 친구들을 생각해 본다.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친구들이 떠나간다는 엄연한 사실과 현실을 마주 하게 되었다.
나와 친구들은 거의 반세기 전에 미국 이민와서 젊은 시절 타주 에서 살다가 중년이 지나서는 같은 교회 다니며 같은 동네에서 친분을 쌓아왔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같은 교회 구역원이다.

봄이 오면 우리들은 신선초와 취나물을 캐러 가까운 산을 다녔고 어떤해에는 해바라기 평원으로 가서 사진도 찍고 가져온 도시락도 먹곤 하였다. 해바라기는 대단히 단단한 식물이었으며 키가 우리들 보다 훨씬 커 해바라기 밭을 헤집고 다니기도 하였다. 늦가을이면 김장을 한답시고 농장에 가서 직접 무우와 배추를 뽑았는데 친구 Y는 무우를 뽑다가 그만 무우를 안고 벌렁 나자빠져 버리는 바람에 우리들은 박장대소 하였다. 오페라도 같이 관람하러 다니고 또 한국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훌쩍 훌쩍 울기도 하였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가면서 자녀들이 결혼을 하고 손주들을 보게 되면서 우리들은 할머니들이 되었다. 친구 P의 딸이 출산을 하게 되면서 이 정 들었던 삶의 터전을 정리하고 딸이 살고 있는 타주로 친구 P는 영영 이사를 가 버렸다. 그때의 아쉬움과 난감함이란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친구 Y는 무릎에 이상이 생겨 지팡이를 짚고 다니게 되면서 외출 자체가 점점 힘들어지게 되었다.
이 친구는 어찌나 유식하고 대범하고 당당한지 우리는 그녀를 똘망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건강하고 팔팔 하던 친구가 지팡이 짚고 걷는 모습을 보니 할 말을 잃었고 그만 숙연해지면서 그녀를 자극하지 않으려 말조심하였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오른쪽 허벅지가 심상치 않아 외과 의사를 찾아 갔더니 물리치료를 받으란다.
스산한 겨울 바람이 불고 있는 창밖을 보니 친구들과 함께 보낸 추억이 나를 과거로 데려간다. 남의나라에 이민와서 열심히 살았고 여기까지 온 것은 그 누구의 은덕 일까?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리라.

친구들을 포함 나 주위의 모든분들의 도움과 배려이리라. 또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한 친구가 있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함께 등산을 다녔는데 아무리 추워도 눈이 내려도 비가 와도 세찬 바람이 불어도 숲속에만 들어가면 이상하게도 어떤 기후나 날씨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정월의 어느 추운 겨울 아침 그 전날 눈이 내렸으므로 우리들은 단단히 무장을 하고 산을 올라 갔고 목적지까지 몇개의 개울을 건너야만 했다.

인정이 많고 의협심이 강한 친구 K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팥죽을 쑤어 등에 메고서 개울을 건너다 그만 얼음위의 돌을 밟다가 미끄러지면서 얼음물에 반쯤 잠기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그만 혼비백산이 되어 친구가 동상에 걸릴까봐 서둘러서 산을 내려왔다.
그후 그리고 몇번의 겨울을 보낸 어느날 아주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친구 K의 딸이 집에서 키우던 개를 산보시키려 나갔다가 그만 갑자기 뛰어가는 개를 쫒아 가다가 넘어지면서 뇌진탕을 일으켜 사망하는 비극이 생긴 것이다. 이 비참하고 참담한 사건을 당한 친구는 말이 없어지고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몇년 후 친구 K는 한국으로 영주귀국 하기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친구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로 떠나버리고 나홀로 여전히 이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내 인생의어느 한 때를 함께 공유하고 희로애락에 울고 웃고 하면서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 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푸르렀던 하늘과 그자리의 고목은 그대로이고 겨울이면 언제나 생각나는 친구 K. 세월이 흐르면, 우리가 나이가 들면, 왜 친구들은 떠나갈까? 왜 노년이 되면 몸이 약해지고 노쇠해 질까? 나는 그대에게 독백한다.
친구여, 우리가 처음 만났을때 그 숲속 길로 다시 걸어가자.

<조태자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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