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달에 들어서면서 기온이 급강하 하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눈이라도 내릴듯 잿빛 하늘에 을씨년스러운 날씨여서 내 마음까지 쓸쓸해진다. 백화점들은 물론 작은 가게들 안에는 할로윈이 지나자마자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휘황찬란한 분위기라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느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나에겐 이맘때면 꼭 생각나는 선물 에피소드가 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옛님과 데이트하던 대학생 시절에 그이는 나에게 William Wordsworth의 시집이나 내 겨울 외투에 어울리는 그린색 스카프를 선물했고 난 곰곰히 생각하던중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어 백화점에서 사는 것보다 내 손수 만든 작품을 선물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난 12월 초순부터 진곤색 털실을 구하여 마침 팔공산 높은 radar 기지에서 공군중위로 근무하던 그이에게 따뜻한 양말을 뜨개질해서 선물하려고 학기말 시험도 낀 바쁜 시기였지만 내 나름대로 틈틈이 뜨개질을 시작했는데 웬걸 12월이 어찌 빨리 지나가던지 만나기로 한 크리스마스 이브가 하루밖에 안남았는데 한짝만 완성했고 그것도 뜨개질에 서투른지라 양말 앞부분이 매끄럽지않고 울퉁불퉁!
심사숙고 끝에 뜨개질의 도사인 언니에게 SOS를 청하여 나의 딱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언니가 쾌히 승락, 한시간만에 한짝을 예쁘고 알맞게 떠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모른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로 만나, 난 내가 손수 떴다고 강조하면서 예쁘게 포장한 양말을 선물하니 꽤나 기뻐했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몇년후 미국에 와 대학원 시절에 결혼을 한 후 그이가 나한테 뭐하나 물어보겠다고 하며 한마디 던진 말 “여보, 당신은 나의 한쪽 발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했었나?” 그때에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때야 이실직고를 하면서 서로 한창 웃은 일이 있었다.
또 한해는 직접 포도주를 담궈 크리스마스에 선물할 마음으로 포도가 한창 제철을 만나 크게 열렸을 때 많이 사서 깨끗히 씻은 후 항아리에 담고 설탕을 넣어 잘 봉한 다음 12월 중순까지 기다렸다가 꼭 짜서 인사동 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한 골동품 가게에서 미리 구입해 두었던 운치있는 병에 부어 선물한 적도 있다. 내 선물을 받고 자기 동료들에게 보여주니 모두들 부러워 했다고 하며 흐뭇해하던 그 미소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나 나름대로의 삶의 철학이 있다고 자부하며 internet은 물론 전화도 집집마다 다 있는게 아니었던 머언 옛날이라 손으로 편지를 쓰고 편지 끝 공간엔 예쁜 그림도 살짝 그려서 직접 만든 봉투에 넣어 이 편지를 받을때 기뻐할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우체국으로 달려가던 청초하고 순수했던 그 시절이 참으로 그리워진다.
우리나라가 그때엔 북한의 GNP 보다 낮은 가난한 나라였지만 이웃을 돌보고 사랑하는 마음, 즉 인정은 더없이 따뜻한 시절이었다. 요즘처럼 이웃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고 또 알려고 하지 않는 각박한 세상이 아니었고 이웃들이 연락없이 찾아와도 식사하고 가시라고 식탁에 수저 하나 더 놓으며 꼭 식사를 대접해서 보내던 인정이 철철 넘치던 시절이었다.
난 선물을 받을 때도 기쁘지만 줄 때 더 행복해진다. 상대방이 이 선물을 좋아할까 아니면 다른 선물을 좋아할까 상상하며 선물을 만들 때도 그렇고 혹 사러 다닐 때도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O. Henry의 단편소설, The Gift of Magi 에서 뉴욕에 사는 두 젊은 부부가 크리스마스는 다가오는데 서로에게 선물할 돈이 없어 자기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팔아 선물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또 학생들에게 읽어주면서 많은 감동을 받곤 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Shel Silverstein이 쓴 The Giving Tree 라는 동화인데 한 사 과나무와 한 소년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줄거리이다. 이 소년은 성장하여 노인이 될때까지 받기만 하고 나무는 항상 자기의 과일에서 부터, 가지며 그루터기까지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주며 기뻐한다.
사도행전 20:35에서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라.” 고 쓰여져 있는 것처럼 주님 오신 대림절 기간에 성탄의 깊은 뜻을 깨닫고 자기와 자기 가족들 외에 주위의 불우한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나눠주는 따뜻한 12월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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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스더 라우든 카운티 공립학교 전직 교사 애쉬번,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