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소식에 쫓기는 마음으로 어둑서니 깔리기 시작한 어스름 밤 길을 거나하여 걷는다. 불어오는 북풍은 윤석열 대통령처럼 세상에서 쓸모가 다된 나의 몸을 조여 온다. 옮기는 걸음마다 엉뚱한 생각들이 소금을 맞은 미꾸리처럼 엉켜서 시작과 끝이 없다.
是와 非의 싸움이다. 명태균인지 동태균인지가 세상을 뒤집어 놓더니 이번엔 계엄령 선포에 된통으로 얻어맞아 어지럽다. 국민이 윤석열을 배반했는지 윤석열이 국민을 배반했는지 노루 꼬리만한 智와 知를 합해도 상식적인 정답의 이익은 아무데도 없고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정종 한사발 격인 ‘디모토리’가 계엄령과 하나님을 비웃듯 뱃속에서 목화송이가 되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아주아주 오래전 예수를 내가 배반했는지 예수가 나를 배반했는지 토를 달지 말고 무조건 믿으면서 순종해야 됐을 것을! 가끔은 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느 절대자에게도 코에 멍에를 꿰이지 않아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 몹시 행복하다. 확실한 믿음을 알기 위해 건성 믿음을 버린 아무것도 믿지 않는 내가 목사나 신부보다 더 착하게 살면 지옥엘 갈까, 천당엘 갈까? 왜 사람 코는 개 코만도 못하고 눈은 물속의 개구리 눈만도 못하게 만들었을까. 전지하고도 전능하다던데.
윤 대통령의 행위처럼 왜 나쁜 것이 존재하고 그 행위를 인도하는 충분조건을 왜 만들었을까. 단 6시간 천하로 끝난 세기의 희극, 계엄령 선포는 하나님 뜻이라는 환상에 미친 쓸개 빠진 개저씨(개념 없는 아저씨) 좀비들이 사방팔방 수두룩하다. 나라를 구하는 길이 계엄령이고 이참에 역대 대통령을 감옥에 가두자는 좀비들이 무슨 무슨 단체의 장들이다. 절대자를 사생결단으로 추종하며 사리(私理)에 너무 밝은 좀비들에게서 상식적인 대답은 백년하청(百年下淸)이다.
밤길을 걷기 전에 모셨던 주(酒)님은 계엄령을 비웃듯 잉걸불로 뱃속에서 이글거리고 있다. 또 다른 생각이 새치기를 한다. 그 생각은 대뜸 젊잖은 하오 體에서 거칠은 하라 體로 동양 달마를 닮은 미국 달마 트럼프에게 충고를 한다.
“어이 노랑머리 달마야. 우리 식구 세 마리는 이번 투표에서 즐겁게 자네를 선택했지. 왜냐구? 트럼프 자네는 우리 세 마리 식구는 물론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적이 있지. 허리 띠를 졸라매며 배고픈 국민들과 어떻게든 살아 버티려는 정은이를 만나 다시 한번 평화를 말하고 참 올(眞理)를 위해서 정치를 해보라구. 이를 악물고 북한을 물어뜯는 인간의 참 올을 거부하는 한국을 보라구. 그게 하나님의 진리인가? 참 올이라는 진리는 곧 하나님이 아닌가벼. 예수는 달팽이 걸음으로 진화하지만 악마라는 상대방은 총알처럼 진화하지.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모두 죽고 망하는 확실성의 엄연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리아는 단 혼자서 번식을 했지만 미국이라는 박테리아는 전쟁을 해야 되는 숙주가 필요하지. 언어와 민족이 다른 국가들의 발전을 기쁨으로 인정해야지 찌거 눌러 혼자 살겠다구? 다 같이 행복이라는 밥을 나누어 먹어야지. 그렇게만 한다면 Mr. 노벨이 Hi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말을 기억하라. “韓國之興은 北韓之興이요 北韓之興은 美國之興이요 美國之興은 萬國之興이다. 노랑머리 달마야 알겠느냐?”
계엄령 선포란다. 밤길의 걸음이 빨라진다. 완고하여 시대를 못 따르는 윤 대통령의 팔랑 귀를 어찌 하랴! 굴원(屈原)이 빠져 죽은 멱라수에 일엽편주 내 간(肝)을 둥둥 띄어서 태백(太白)이 지은 장진주(帐進酒)를 안주삼아 ‘여름보다 뜨거운’ 정종 한 사발 주님을 공손하게 모셔야 쓰겠다. 계엄령의 내란죄를 어찌 할거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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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락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