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만에 찾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이태원역 지하철 1번 출구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밖으로 나와보니 이런, 해밀톤 호텔 앞이네, 그렇다면 바로 호텔 서쪽 골목이 159명이 죽고 200여 명이 부상당한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바로 그곳 아닌가.
얼마나 좁고 짧은 길인지 얼른 언덕길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봤다. 이 골목 저지대에서 2022년 10월 29일 10시15분께 핼로윈을 앞두고 이태원에 몰려든 인파들이 서로 오고 가느라고 엉켜버렸다. 누군가 넘어지면서 뒤따르는 사람들이 차례로 넘어져 겹겹이 쌓이는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흉부압박 질식사, 뇌손상, 안면 눌림, 심하게 꺾인 경추, 장기파열 등으로 사망했거나 중상을 입은 피해자들, 한달동안 모든 방송이 이태원 사고만 지속적으로 보도하니 우울증과 트라우마가 생긴 시청자들도 많았다.
좁은 골목 오르막에는 여전히 와이키키 바가 있고 내리막에는 해밀톤 골프샵, 가방 백 판매점, 이마트24가 영업 중이다. 가게 맞은 편에 해밀톤 호텔 파란색 가벽이 서있는데 그 앞에 세워진 얇고 길다란 빌보드가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라는 추모시설이란다. 영어로 ‘OCTOBER 29 MEMORIAL ALLEY’라고 씌어져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2개월마다 입간판 빌보드 안에 사진과 시민들의 글을 바꿔 올린다지만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 앞이나 위나 옆이나 사진 한 장, 포스터 한 장, 꽃 한 송이 놓을 공간이 없다.
이태원은 그 참사이후 음식점을 비롯 상가의 매출이 3분의 1로 토막나고 사무실 공실률이 늘어났으며 저녁이나 주말이면 흥청대던 거리가 적막에 쌓였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홍대 앞으로 가버렸다니 2년이 되어가지만 회복이 되지 않는다 했다.
그러니 이곳에서 추모식 하지 말고 꽃다발 갖다 놓지 말라고 아예 송곳 꽂을 공간조차 안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잠시 후 만난 친구는 언덕 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려면 이곳을 지나야 하는데 7개월동안 차마 이 길을 갈 수가 없어 먼 길로 돌아갔다고 했다.
10월 29일은 이태원 참사 2주년이다. 올 5월에야 ‘10.29 이태원 특별법’ 이 통과되고 최근에야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지난 2일에는 이태원 유가족 특조위가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한 1호 조사신청서를 접수했다고 한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고 손자손녀였을 희생자들은 대부분 20~30대다. 한국민은 물론 이란 러시아 중국 미국 노르웨이 베트남 등에서 온 유학생들도 있었다. 교환학생, 대학 박사과정 부부, K문화가 뜨자 한국어학당에 다니던 친구들, 이들은 오랜만에 기쁜 마음으로 거리에 나섰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을 자유롭게 못했고 사회적 거리 두기에 마스크를 써야 했다. 친구들과 여행도 못가다가 코로나19가 풀리고 맞은 축제날이니 얼마나 신났을까? 수다 떨고 맛있는 것 먹고 구경도 하는 재미, 젊어 그것도 안누리면 무얼 하는가.
그날 그 시각, 보통 4만 명이 몰리는 이태원에 평소의 3배인 13만여 명이 몰렸다고 한다. 112상황실에 긴급전화가 빗발쳐도 연결이 안되고, 통제할 인원 부족이 일을 키웠고 사고 수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안전대책 미비의 정부를 탓해야지 이들에게 ‘놀러나왔다가 그랬다’ 는 말은 하지말자.
뜻하지 않게 이태원 그 골목을 지나게 되었고 친구와 회포를 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다시 그 골목을 지나야 했다.
올라갈 때는 못보았는데 내려가면서 핑크색 장미 한송이를 보았다. 그새 누가 다녀간 것인지. 추모 빌보드 옆에 설치된 말뚝의 쇠사슬 사이에 꽃힌 장미꽃은, 브라운색 리본을 단 비닐에 쌓여 대참사가 일어난 골목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있었다.
꽃을 둔 그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태원 상인들이나 정부나 유가족의 입장 이전에 그저 채 피지도 못한 채 숨이 막혀 죽어간 청춘들이 가여운 것이다.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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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