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Lost Angeles’ 가 된 로스앤젤레스

2025-01-21 (화) 12:00:00 윤여춘 전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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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해안에는 San 또는 Santa로 시작하는 스페인어 도시들이 많다. 샌디에고, 샌피드로, 샌클레멘티, 샌완카피스트라노, 샌타모니카, 샌타바바라, 샌타클라라, 샌호세, 샌프란시스코 등이다. 스페인이 가톨릭 포교를 빙자해 식민지를 확장하려고 지은 21개 미션(성당)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San은 영어식으로 St.(Saint, 聖)이고 Santa는 그 여성 형이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엔 San도, Santa도 붙어 있지 않다. 애당초 성모 마리아를 기린 이름이므로 ‘산타마리아’가 제격이었다. LA는 현재 다운타운의 푸에플로 플라자 역사구역 자리에 1781년 스페인 군인과 ‘포블라도레스’(동네사람)로 불린 11가구, 44명으로 탄생했다. 대부분 원주민과 혼혈인이었다. 멀찍이 샌개브리엘에 미션이 세워진 건 그보다 10년 전이다.

원래 이 마을 이름은 장장 10개 단어였다. ‘El Pueblo de Nuestra Senora la Reina de los Angeles’(천사들의 여왕 성모 마리아 마을)이다. 후에 ‘Los Angeles’ 두 단어로 줄었고, ‘LA’로 더 단축됐다. 그런데, 구글을 탐색하다가 눈이 똥그래졌다. 현재의 다운타운 지역에 있었던 ‘통바’ 원주민부족의 ‘이야앙가’라는 부락 이름이 ‘연기의 골짜기’라는 뜻이라고 했다.


새해 들자마자 LA를 풍비박살 낸 산불사태는 전대미문의 재난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적었고 그나마 걸어 다니거나 말을 타고 다닌 300여년전 LA에 지금처럼 스모그가 심했을 리 없다. 그 당시 샌개브리엘 골짜기에 자욱이 끼었던 건 스모그 아닌 산불연기였음이 자명하다. 그래서 구글을 뒤져보니 LA 역사는 바로 산불 역사나 매한가지였다.

LA 카운티에서 5,000에이커 이상을 태운 대형 산불만 60건이나 발생했다. 2009년 8월 앤젤레스 국유림(ANF)에서 일어난 ‘스테이션’ 산불은 물경 16만577 에이커를 태워 LA 사상 최대산불로 기록됐다. 2020년 6월 역시 ANF에서 발생한 ‘밥캣’ 산불과 1970년 9월 뉴홀에서 채스워스를 거쳐 시미 밸리까지 번진 ‘클램핏’ 산불도 각각 10만 에이커 이상을 태웠다.

현재 진행 중인 팰리세이드 산불은 3,850여 에이커, 알타데나의 ‘이튼’ 산불은 1,400여 에이커를 태워 각각 26위와 48위에 올라 있다. 불길이 계속 번지므로 랭킹도 더 오를 터이다. 하지만 소실된 건축물 수에서는 이튼 산불이 현재까지 8,988채, 팰리세이드 산불이 3,857채로 단연 1~2위를 달린다. 3위인 2018년 11월의 말리부 산불은 1,121채로 한참 뒤처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명피해가 가장 컸던 산불은 대형 산불이 아니었다. 1933년 10월 LA 한복판 그리피스 파크에서 발생한 산불은 고작 47에이커를 태웠지만 29명이 떼죽음을 했다. 당시 공원공사에 고용된 날품인부 3,700여명 중 일부가 숲에서 일어난 불을 끄려고 삽과 곡괭이를 들고 덤벼들었다가 갑자기 바람이 강해지고 방향도 바뀌면서 불길에 갇혀 변을 당했다.

그 뒤를 이어 현재까지 17명을 희생시킨 이튼 산불이 2위이다. 전체 캘리포니아주 산불역사에서도 5번째 많은 인명피해이다. 10명의 희생자를 낸 팰리세이드 산불은 1966년 11월 실마 인근 루프 캐년에서 일어난 ‘루프’ 산불의 12명에 이어 4위에 올라 있다. 1970년 9월 말리부 캐년에서 발생한 ‘라이트’ 산불도 10명의 사망자를 내 팰리세이드 산불과 공동 4위이다.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성은 천사(남성)들을 집단 강간하려는 패악을 범했다가 여호와가 비처럼 내린 유황불에 전멸하고 ‘옹기점처럼’ 연기가 치솟았다. 요즘 LA 하늘에도 연기가 옹기점처럼 치솟는다. 소돔 고모라 못지않게 범죄가 만연하는 LA에선 성모 마리아의 천사들도 이미 오래 전에 포기하고 떠난 듯하다. Los Angeles가 아니라 ‘Lost’ Angeles이다.

<윤여춘 전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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