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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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

2024-10-27 (일) 09:47:16 서윤석 국제PEN 클럽,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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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밤 달빛 아래에서도 외롭지 않게 보이네요
농사를 끝내고 까만 씨앗을 줄기에 매달으니 만족하는가요?

이 세상에서 태어나고 살고 떠나는 것이 다 비슷하다지만
저녁 놀 지던 무렵 텅 빈 집을 나와 어디로 가는지
누런 고추나뭇잎 사이에서
아직도 단물을 찾아 헤매는 벌 한 마리 보았나요?

당신은 백만 년 살아오며
땡볕 쪼이던 지독한 가뭄도 이겨내고
장마철에는 청 개구리도 숨겨 주었지요
남 모르게 노란 꽃술 달린 눈꽃을 피더니
거센 비바람, 눈보라도 맞으면서
춘하추동 한 획을 또 그었네요

귀뚜라미 저토록 슬퍼하는 이 밤
칼날에 몸통이 잘려도 아파하지 않던 당신
깨진 화분에서도 살아남아
기름진 땅으로 피붙이도 보내고
푸르고 싱싱한 불굴의 팔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하네요

<서윤석 국제PEN 클럽,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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