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심 법원 “이태원 참사는 인재…위험 예견됐는데도 대처 소홀”
▶ 경찰책임자 업무상과실 첫 인정…송병주 전 112상황실장 금고 2년
▶ 용산구청 관계자들은 “과실인정 어려워” 전원 무죄…유족 반발
(서울=연합뉴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부실대응 관련 1심 선고에서 금고 3년 형을 선고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4.9.30
이태원 참사에 부실 대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임재(54)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이 1심에서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참사 희생자 2주기를 약 한 달 앞두고 나온 판결로, 참사 당시 현장 경찰 대응을 지휘한 책임자의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박희영(63) 용산구청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배성중 부장판사)는 30일(이하 한국시간) 이태원 참사 당시 용산경찰 및 구청 책임자들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이 전 서장에게 금고 3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송병주(53)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에게는 금고 2년, 박모 전 112 상황팀장에게는 각각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재판에서는 이들이 핼러윈 데이를 맞은 이태원에 많은 사람이 몰려 이로 인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었는지 여부가 중요하게 다뤄졌다.
재판부는 경찰의 경우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과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해 할 임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언론보도와 경찰의 정보 보고 등을 종합하면 2022년 핼러윈 데이를 맞은 이태원 경사진 골목에 수많은 군중이 밀집돼 보행자들이 한 방향으로 쏠리거나 넘어지며 서로 압박해 (보행자의) 생명, 신체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고 예견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전 서장에게 "참사 당일 오후부터 이태원에 유입되는 인파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오후 6시 30분께부터 사고 부근 압사의 위험 및 인원 통제를 요청하는 112신고가 있었지만 112 자서망(교신용 무전망)을 제대로 청취하지 않거나 소홀히 대처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서장 측은 그간 대규모 압사 사고 발생을 예상할 수 없었으며 핼러윈 축제 관련 사전 대책 마련이나 참사 발생 후 조처와 관련해서도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취지로 주장해 왔으나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무려 158명(참사 이후 극단적 선택 10대 포함한 공식 집계 사망자는 159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312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다"며 "이는 2014년 세월호 이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최대 인명사고이자 1995년 삼풍백화점 이후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최대 인명사고"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태원 참사가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피고인들이 각자 자리에서 주의 의무를 다하면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서장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일 사고 방지 대책을 세우지 않고 경비 기동대 배치와 도로 통제 등 조치를 제때 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키운 혐의 등으로 지난해 1월 구속 기소됐다.
또 부실 대응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현장 도착 시각을 허위로 기재하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한 혐의(허위공문서작성·행사)와 국회 청문회에서 참사를 더 늦게 인지한 것처럼 증언하고 서울경찰청에 경비기동대 지원 요청을 지시했다고 허위 증언한 혐의 등(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으로도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 전 서장의 위증 혐의 등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로 함께 기소된 정현우(54) 전 여성청소년과장과 최모 전 생활안전과 경위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한편 이어진 재판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구청장, 유승재 전 용산구 부구청장, 최원준 전 용산구 안전재난과장, 문인환 전 용산구 안전건설교통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들에게는 전원 무죄가 선고됐다.
박 구청장 등은 참사 당일 대규모 인파로 사상 사고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안전관리계획을 세우지 않고 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적정히 운영하지 않은 혐의로 지난해 1월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이 사건 당시 재난안전법령에 다중 운집으로 인한 압사 사고가 재난 유형으로 분류돼 있지 않았고 특히 재난안전법령은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 별도의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규정 역시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봤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사전대비 대책 마련 과정에서 피고인들에게 형사 책임 물어야 할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박 구청장이 참사 당일 오후 9시께 당직실 직원에게 삼각지역 인근 집회 현장에서 시위 전단지를 수거하라고 지시하면서 대응이 늦어졌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는 "검찰의 충분한 주장과 입증이 부족해 전단지 수거와 사고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박 구청장의 무죄 선고에 대해 유족들은 강하게 항의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2년이라는 세월 동안 길거리에서 우리 아이들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책임을 가진 자들의 무책임과 무능을 계속 지적하고 이야기했다"며 "그런데도 오늘의 재판 결과는 너무나 참담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유가족은 박 구청장의 차량 앞에 누웠다가 경찰에 끌려 나가기도 했다.
박 구청장은 선고 후 법정을 나오면서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유족이나 희생자에게 할 말은 없는지' 등을 묻는 취재진에게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이 전 서장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 "(유족에게)죄송하고 또 죄송스럽다"고 말한 뒤 법정을 떠났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재판 결과와 관련해 "판결문을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재판을 받는 피고인은 해밀톤호텔을 운영하는 해밀톤관광 등 법인 2곳을 포함해 총 23명이다.
검찰은 이 중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이 전 서장 등 경찰 8명, 용산구청 관계자 4명 등 총 12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지난 2일 김 전 청장에게 금고 5년을 구형했다. 김 전 청장 등에 대한 선고 공판은 10월 17일 오전 10시 30분에 열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