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립학교 성정체성 교육 논란

2024-09-18 (수) 황의경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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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들 학교에서 시작된 인연으로 친하게 지내는 일곱 가족이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몰려다니느라 신났고, 부모들은 자연스레 따로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이가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교육에 대한 대화가 가장 진지하게 이어졌다. 이날의 화두는 ‘동성애 교육’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주에 살고 있는 일곱 명의 (보수적인) 한인 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급진적으로 변해가는 교내 LGBTQ 관련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저마다 느끼는 불안감을 토로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내 LGBTQ+ 관련 교육과 정책 변화는 부모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학교 내에서 성 정체성 및 성적 지향과 관련된 주제가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가르쳐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많은 부모들을 걱정케 했다. 이전에는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던 민감한 주제들이 교과 과정에 포함되면서 자녀들이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전통적인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지난 2013년 재정돼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법 중 하나인 AB1266은 캘리포니아주 공립학교에서 학생들이 본인이 원하는 성별로 학교 내 화장실이나 체육 수업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 정체성에 대한 학생의 자율성을 존중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이지만, 소수인 성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 다수를 역차별 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법적인 보호아래 신체 건장한 생물학적 남성이 자신이 여성임을 주장하며 여자 탈의실이나 화장실에 출입할 경우 이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강요는 입장에 따라 누구에게는 충분히 폭력적일 수 있다.

2021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교내에서 학생이 성별을 전환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힐 때, 부모의 동의 없이도 교사와 상담을 통해 진행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됐다. 이와 관련 자녀의 성정체성에 대한 학부모의 알 권리를 주장한 치노밸리 통합교육구의 정책은 이달 초 캘리포니아 고등법원에 의해 LGBTQ+ 학생들의 권리 보호를 명목으로 영원히 차단 됐다.

지난해 7월 치노밸리 교육구 위원회는 학생이 출생증명서에 명시된 ‘생물학적 성별’이 아닌 다른 성별로 바꿔 달라거나 대우를 요청할 경우 부모에게 이를 알리는 정책을 승인했다. 당시 이 정책에 해당하는 학생의 요청에는 이름, 대명사, 화장실이나 운동 종목 등이 포함됐다. 정책 승인 한 달여 후 가주 검찰청은 치노밸리 교육구의 학부모 알림 정책이 학생의 사생활 보호법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정책이 일부 학생들에게 차별적이라며 손을 들어준 것이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캘리포니아주가 부모의 알 권리를 빼앗은 판결을 한 것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법원의 판단이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치노밸리 교육구에서 정책이 통과되기 전 학교위원회 의원들은 성소수자 학생들을 ‘정실 질환자’나 ‘변태적 성향’을 갖고 있는 존재로 묘사하거나, 국가와 가족의 성실성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표현했다. 샌버나디노 카운티 고등법원 판사인 마이클 삭스는 판결 후 “부모는 여전히 자녀 혹은 교사와 자녀의 성 정체성에 대해 대화할 자유가 있으며 권리를 주장할 경우 정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모인 부모들의 주된 생각은 학생들 권리는 보장하되 성소수자로 사는 것이 멋있게 그려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이들에 미치게 될 영향이었다. 그들은 다만 자녀들이 사회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동시에, 전통적인 가치관을 유지하며 혼란 없이 자라기를 바라고 있었다.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가지 밖에 없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이러한 교육 정책에 대한 입장을 신중히 고려하여,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좋다 싫다 흑백논리로만 판단한다면 생각지도 못한 대가가 따를 수도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아시아 이민자인 우리도 소수다. 소수인 우리가 소수를 보호하는 법을 덮어놓고 반대하는 것도 어찌 보면 모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황의경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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