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24년은 ‘끔찍한 한 해’가 될 것인가… 푸틴에게

2024-08-26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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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엄청난 맨 파워와 화력에 눌려 기력이 거의 고갈된 것 같다. 러시아 당국자들은 상당히 기고만장해 있다. 승리는 필연적 귀결이라는 확신과 함께.’

8월초, 그러니까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년6개월째에 막 접어든 시점에 외신들이 전한 우크라이나 전선의 분위기다.

오랫동안 기대됐던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은 실패로 그쳤다. 거기에다가 또 다른 호재가 등장했다. 트럼프 변수다. 그러니….


보도대로 전황은 그러면 우크라이나에게 그토록 절망적이었나.

‘압도적 화력과 병력을 앞세워 전 전선에서 러시아군은 지속적인 공세를 펼치는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허덕이고 있다.’ 8월초 시점의 대체적인 전선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실제상황은 다르다는 게 뉴스위크지의 설명이다.

러시아는 압도적인 화력에 엄청난 병력을 투입해 공세를 펼쳤다. 그렇게 해 올린 전과가 그런데 그렇다. 미미한 수준이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는 전체의 18%이하로 1년 이상 계속 된 공세를 통해 겨우 1% 정도 점령지를 늘렸다. 그 대가는 그러나 참혹하다.

올해 1월에서 4월까지의 기간 동안에만 러시아군은 8만30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올해 말까지 러시아군 사상자 수는 25만여 명에 이르러 2022년 2월 침공이후 모두 69만 여명에 다다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과거 1979년~1989년 1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전사한 소련군의 50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그 후유증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2022년 2월 침공이전 수준으로 러시아군을 복원하는 데에만 최소 5년 이상이 소요된다는 것이 영국정보당국의 분석이다. 달리 말하면 푸틴은 우크라이나 정복에 러시아의 전체 군사력과 열강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올인’식으로 베팅했다가 파탄을 맞이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까.


전략적으로도 우크라이나 침공은 대실패로 이어졌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야기구)의 동진을 저지 한다’는 것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한 목표이자 대의명분이다. 그러나 서방의 결집력이 강화되고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과 함께 러시아의 군사지정학적 입지는 오히려 더 약화됐다.

러시아 당국자들이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는 것은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 가능성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중단되고 러시아의 승리는… 뭐 이런 계산을 하고 있다는 거다.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는 크렘린 측의 희망고문에 지나지 않는다.

워싱턴을 비롯해 유럽에서도 전쟁피로증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 가지 컨센서스가 굳어지고 있다.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동아시아의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유럽이, 더 나가 서방 자유세계의 안보에 구멍이 뚫린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우크라이나 방어는 일종의 머스트(must)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우크라이나가 선전을 거듭해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 줄 때 가사 트럼프가 백악관에 재입성을 한다고 해도 입장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뉴스위크의 진단이다.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 8월 6일 D 데이를 기해 러시아영토로 대대적 진격을 감행,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일부 자국영토에 대한 주권을 상실하는 수모를 크렘린에게 안겨준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대공세가 그것이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군은 탁월한 현대전 수행 역량을 과시했다. 동시에 여과 없이 드러난 것은 푸틴체제의 허구성과 취약점이라는 것이 주요 외신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푸틴은 지배자 같이 보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푸틴 정권은 서방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불안정한 처지에 몰려 있다. 전세가 불리할 때마다 핵 공격 등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확전을 경고해왔다. 현실은 그 반대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군사안보전문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진단이다. 철저한 상명하복(上命下服)에만 길들여져 위기가 발생해도 자체 대처능력이 없는 하부구조. 그 러시아는 허약하다는 것이 제2의 쿠르스크전투가 알려준 진실이라는 거다.

이와 함께 푸틴으로서는 아주 불길하게 들리는 뉴스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푸틴의 이너 서클이 동요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분석이다. 친 크렘린성향의 군사 블로거들이 크렘린의 기득권 세력에 불만을 공공연히 표출하는가 하면 일부 엘리트들도 공개적으로 전쟁을 비난하고 나서는 등 푸틴의 정치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

관련해 주목되고 있는 것은 워싱턴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다. 공화당 유력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진격을 환영, 지지하는 움직임이 그 하나다. 그 둘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3차 대전의 서곡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력한 지원을 통해 러시아를 패퇴시킴으로 동아시아로 전쟁이 확산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높여가고 있는 사실이다.

2024년은 푸틴에게 ‘끔찍한 한 해(Annus horribilis)’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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