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한 한국인(the Ugly Koreans)’… 그리고 ‘뉴 코리언’

2024-08-12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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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이 차오르고 있다. 유포리아(euphoria)라고 하던가. 모처럼의 행복감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하다. 금빛 새 역사를 쓰고 있는 한국 선수들. 파리 발로 연일 전해져온 뉴스들이 희망과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당초 예상치는 금메달 5개였다. 그런데 개막과 함께 금메달이 연일 쏟아지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 할까.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36년 동안 올림픽 여자 단체전 시상식에서는 애국가만 울려 퍼졌다.’ 한국 양궁 여자 단체전이 10연패란 대기록을 세우자 한 국내 언론이 에둘러 한 표현에서도 그 감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매력까지 쏜 올림픽 사격’- 5개의 금메달을 딴 양궁에 이어 3개의 금메달을 거둬들인 한국 사격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또 다른 국내 언론은 이런 식으로 묘사했다.

‘…펜싱은 이번엔 남자 사브르 단체 3연패를 했고, 2관왕 오상욱을 스타로 탄생시켰다. 종주국 프랑스 등 유럽을 압도하는 실력과 체격을 뽐내며 펜싱 강국이 된 모습에 보는 사람들도 신이 났다.’ ‘화면에 나타난 대한민국 선수들은 누구 하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지든 이기든 참가가 목적이라는 올림픽을 진정으로 즐기는 모습이었다.’

‘탁구 신유빈 선수는 일본선수에게 졌다. 한일전은 꼭 이겨야 한다는 쉰내 나는 감각이었으면 씩씩거렸을 거다. 신 선수는 패배가 확인된 순간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 축하를 건넸다.’

올림픽 성적도 성적이지만 지신만의 이야기, 이와 함께 독특한 서사를 써내려간 한국 선수들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다.

대반전을 이끌어 낸 주역은 ‘뉴 코리언’, MZ세대(1990~2010년생)선수들이다. 금메달리스트의 평균 나이부터가 그렇다. 도쿄 27.1세에서 24세 미만으로 젊어졌다. 거기에다가 사격 17세 반효진과 19세 오예진, 양궁 19세 남수현, 태권도 20세 박태준까지 말 그대로 앙팡테리블 (Enfant terrible - 무서운 이이들)이 약진을 하면서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 ‘뉴 코리언’들의 활약상. 이는 MZ세대 전체에 대한 찬사로 이어지고 분위기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은 매번 한국의 변화를 확인하게 해준다. 예상을 깬 성적은 21세기를 이끌 신세대의 자신감과 에너지를 확인한 것이다.’ 한 국내 신문의 논평이다.


기성세대는 신세대를 불안하게 바라본다.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도 마찬가지다. 물질만능주의와 책임감이 부족하다 등등이 MZ세대에 대해 쏟아진 부정적 시각이다.

그러나 파리 올림픽이라는 국제무대를 통해 MZ세대 ‘뉴 코리언’선수들의 역량과 자세는 글로벌 일류임이 새삼 확인됐다. 양궁, 태권도 등에서 금메달을 쓸어 담으면서 ‘K스포츠’란 신조어까지 생겨나면서.

발랄하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을 즐길 정도로 여유가 넘친다. 거기에다가 세련됐다. 매너도, 패션까지도. 한국 선수들에게서 발견되는 모습이다. 그 당당함이, 여유가 곳곳에서 묻어난 게 이번 파리 올림픽이라는 찬사가 잇달고 있는 것이다.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 심지어 K방산도 일상용어가 되다 시피 했다. ‘한류의 세계화’- 이런 시대적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자아 의식이 형성됐다. 그 한국의 MZ세대는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 표준이 되고 있음을 알린 게 이번 파리올림픽이란 지적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잔영(殘影)이 떠오른다. 90년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인들이 대거 해외단체 여행을 떠나기 시작해 파리 등 유럽의 거리를 거닐던 모습이다.

“솔직히 말해 그 때 그들의 모습은 시끄럽고 꽤나 촌스러웠다. 옷차림부터가 그랬다. 해외 문화에 둔감했다. 뿐만 아니라 매너도 형편없었다. 그래서 악명이 높았다. ‘추한 한국인(the Ugly Koreans)’이란 말이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영국의 더 타임스 서울 특파원을 지낸 앤드루 새먼의 회고담이다. 그가 보았던 어글리 코리언들은 이제는 7순을 훌쩍 넘긴 노년 세대들이다.

그의 회고담은 이렇게 이어진다. “… 그리고 십 수 년 지난 후 파리 드골 공항에서 목격하게 된 한국의 여행자들의 행동과 외양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대다수가 20~30대인 그들은 모두 잘생기고 잘 차려입고 매너도 좋았다. 요컨대 한국 이미지에 플러스가 되는 모습이다.”

새먼의 회고담은 2000년대 젊은 세대에 비교할 때 거칠고 조야하기까지 보이는 전 세대 한국인들. 이제는 노년세대가 된 그들에 대한 평가절하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추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한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대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가 말하고자 한 포인트다.

6.25, 4.19를 겪어냈다. 그런 가운데 경제 기적을 일구어냈고 또 군사정권의 ‘권력 국가’의 강을 넘어 ‘법치 국가’로 이끌어 대한민국을 세계 정치무대에 당당히 진입하게 했다. 그 과정에서 희생에 또 희생만 해온 세대가 바로 한국의 노년 세대라는 진단과 함께.

글로벌 표준으로 떠오르고 있은 ‘뉴 코리언’- 이 기적의 세대 출현을 가능케 한 위대한 세대에 대한 평가 작업도 더 늦기 전에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 건국 76주년을 맞아 던져보는 질문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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