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패착(敗着)이 아닐까

2025-04-07 (월) 12:00:00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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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야기가 그치지 않고 있다. 다발성 위기(poly-crisis)가 뉴 노멀이 된 탓인가. 전쟁은 시대의 화두라도 된 것 같다.

‘2개의 전쟁에 스스로를 옥죄이고 있다.’- 유럽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하나다. 푸틴 러시아의 침공으로 유발된 이 전쟁이 4년째로 접어들면서 전쟁의 불길은 발트 3국을 비롯, 유럽전역으로 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

또 다른 전선은 남부다. 전쟁난민에, 불법이민자들. 저마다 다른 문화에, 종교전통을 지닌 인간물결의 쇄도와 함께 유럽의 정치와 문화는 내부로부터 변화를 강요당하고 있다.


동부와 남부, 이 2개 전선을 바라보는 유럽의 엘리트들과 일반 유권자들의 시각에는 커다란 갭이 놓여 있다. ‘동부전선 상황에 대비한 재무장이 시급하다.’-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이 내보이고 있는 시각이다. 반면 일반 유권자들은 불법이민자들이 몰려들고 있는 남부전선의 상황에 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표(vote)는 유권자로부터 나온다. 때문에 정치지도자들은 유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함수관계에 묶여 유럽의 정치는 갈지자 행태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팀은 3차 세계대전에서 지고 있다.’- 미국에서 제기되는 지적이다.

미의회 전문지 더 힐도 이 논란에 가담, 출범 11개주 밖에 안 된 시점에서 트럼프 팀은 2개 세계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그 첫 번째 세계전쟁은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서방을 향해 선언한 전쟁이다. 두 번째는 일종의 은유적 표현으로 트럼프 자신이 미국의 맹방들에게 선포한 전쟁이다. 이 두 세계전쟁에서 모두 패착(敗着)을 두고 있다는 것.

푸틴은 우크라이나 휴전에 진심일까. 아니, 트럼프가 제시한 휴전안을 시간벌이로만 이용하고 있다는 거다.

모스크바는 지난해보다 10만이 더 많은 16만 명에 대한 징집 령을 내렸다. 징병은 자칫 정치문제로 비화될 수 있어 푸틴으로서도 버거운 조치다. 그러면 도대체 왜. 다름 아닌 돈바스지역에서 대대적 공세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로 그치는 게 아니다. 푸틴은 중동지역에서의 대리전쟁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이란에 탄도미사일을 공급, 예멘의 후티 반군과 소말리아의 무장 테러단체 알샤바브를 지원하고 있다. 수에즈운하에서 홍해, 아덴만으로 이어지는 해역에서 서방선박의 물자수송을 방해하고 미 해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서다. 거기에다가 이란의 핵무장을 적극 돕고 있다.

이 같은 푸틴 러시아의 엄호사격에 힘입은 것인가. 시진핑의 중국도 인도태평양지역에서 심상치 않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대대적인 국방비 증액(7.5%)에 나섰다. 동시에 중국 해군은 계속 도발수위를 높이고 있다. 멀리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의 해역에서 대대적 실탄기동훈련을 벌였다. 인도네시아의 북부 전관해역에 해양경비정을 침투시키는 등 남중국해를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고 있다.

더 불길한 것은 3월 마지막 주에 실시된 대대적인 대만봉쇄와 상륙 기동훈련이다. 100여 척의 각종 전함이 동원된 이 기동훈련을 통해 중국해군은 대만의 항구들과 에너지시설에 대한 정밀타격 모의전투를 벌였다.

이 일련의 움직임들이 그렇다. 일부 트럼프 팀의 주장과는 달리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는 더욱 밀착되고 있고 도발의 스케일은 더 넓어지고 있다. 그 증좌라는 것이 더 힐의 진단이다.

이런 정황에서 트럼프 팀은 ‘관세로 미국을 해방시키겠다’는 선언과 함께 동맹국에도 관세전쟁을 선포했다. 탄핵광풍이 불고 있던 대한민국에도 예외 없이.

한마디로 대패착이 아닐까. 적대세력을 제어하고 맹방의 결집을 이끌어내기 위한 총체적 국력 수단(DIME- 외교·정보·군사·경제)을 역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 관세해방 선언이 나온 지 한 주도 못돼 벌써부터 유럽 등지에서 ‘탈미국 움직임’이 보여 하는 말이다.

이 와중에 이루어진 것이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인용 결정이다. 국제지정학적으로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을까.

‘단순한 한국 국내로 국한된 정치위기가 아니다. 충격파는 한반도를 넘어 미국의 전략적 취약성으로 이어질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시아 타임스의 지적이다.

탄핵에 따른 윤 대통령의 퇴장과 함께 한국은 민주주의 맹방들과 점차 독단적이고 공격적인 중국 사이의 위태로운 국제 지정학적 갈림길에 서게 됐다는 거다.

이번 탄핵사태의 최대 수혜자로 더 힐은 공산당 통치의 중국을 지목, 미국 파워의 최전선기지로서의 한국이 중립 완충지대, 어쩌면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상쇄시키는 중국의 고분고분한 파트너로 전락할 가능성까지 내다보았다.

중국이 추구하는 한국정책은 근본적으로 조공외교로 이런 점에서 베이징이 가장 총애하는 한국의 정치인은 균형외교, 다시 말해 미국과의 동맹 다운그레이드와 함께 중국과의 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이재명인 것으로 지목했다.

한국은 미국과 서방의 확고부동한 파트너로 계속 남을 것인가, 아니면 중국에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셰셰’만 연발하는 조공국이 될 것인가. 앞으로의 두 달이 주목된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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