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긴 하루

2024-07-12 (금) 박인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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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의성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큰소리와 함께 충격이 느껴졌다. 일순간 하얀 물체가 시야를 가렸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감지하지 못했다. 운전석 앞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강한 햇살을 등에 업은 희뿌연 가루가 연기처럼 솟아오르더니 이내 흩어져 차 안에 가득했다. 어디선가 헬륨 풍선에서 공기 빠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밖을 보고 싶었으나, 사방이 흰 막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뭔가 폭발했다고 생각했다. 가슴에 감각이 없고 숨 쉬는 게 힘들었다. 그제야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짝을 더듬어 간신히 손잡이를 찾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 한 뼘쯤 열었을 때,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도시를 덮은 고온의 열기가 숨통을 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차도에 널브러졌다. 그들은 여기 있으면 2차 사고를 당할 수 있다며 나를 인도 쪽으로 부축해 주었다.

교통사고였다. 흰 가루로 얼룩진 안경 너머로 형편없이 망가진 차가 보였다. 차 안에 있어야 할 부속과 선들이 모두 밖으로 튀어나왔고, 문짝은 찌그러진 채 중앙 분리대 위에 올라가 있었다. 경찰이 사고 순간을 묻는데 갑자기 생긴 일이라 모른다고 대답했다. 상대 차량도 기억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증인의 신빙성 없는 증언에 경찰은 말의 앞뒤가 안 맞는다며 전화번호를 받고 보냈다. 밤이 되자 앰뷸런스에 타지 않은 게 후회될 만큼 흉통이 심했다. 나는 폭염속에서 벌벌 떨며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서울 시청역 교차로 부근에서 발생한 차량 인도 돌진 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쳤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나도 차 사고 끝이라 섬뜩했고 희생자들이 안타까웠다. 남편이 리모컨으로 관련 영상을 계속 넘기며 자기 생각을 보태 입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나한테 하고 싶은 욕을 거기다 하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사고 트라우마로 시달리는데, 그걸 왜 계속 트는 거냐고 버럭 화를 냈다. 보통 남자 같았으면 지금 뭘 잘했다고 큰소리치냐며 반박했을 텐데, 말없이 화면을 돌렸다. 얼마나 속이 부글부글 끓었을까. 할 말이 없어 참은 게 아니었을 것이다.


내 잘못으로 밝혀졌다. 블랙박스 확인 전까진 몸이 아파 고통스러웠고, 이후론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웠다. 육신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정신적 고통이었다. 사고를 냈는데 모른다는 게 너무 끔찍해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사고 수습은 보험회사가 하는 중이고 나를 질책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데, 시간이 갈수록 살아있는 게 지옥 같았다. 차라리 그날 죽었어야 했다는 말을 수없이 내뱉었다. 30년 무사고 운전자라는 교만함이 기저에 깔려 있었던 걸까? 그래서 자신의 의식을 믿고 부주의하게 운전했던 건 아닐까? 추측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질 때마다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살면서 크고 작은 접촉 사고가 여러 번 있었지만, 늘 피해자였다. 가해자 입장이 되니 모든 게 피폐하다. 피해자가 잘못되었다면 제정신으로 살지 못했을 것이다. 천행이었다. 여전히 차 사고 나는 악몽을 꾸고, 거리의 차가 온통 내게 달려드는 것 같아 온몸이 오그라든다. 일주일이 흘렀다. 남편은 내가 싼 똥 치우느라 바쁘고, 나는 피해자 위해 기도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숨 쉬는 건 다소 편해졌다. 찢어진 상처엔 딱지가 앉았고 몸에 핀 멍 꽃은 색이 엷어지는 중이다.

내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걸까! 오늘도 답을 찾지 못한 채 긴 하루가 진다.

<박인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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